지난 3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수능최저기준 폐지 반대 및 정시 확대' 요구 집회가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3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수능최저기준 폐지 반대 및 정시 확대' 요구 집회가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외의 다양한 요소로 신입생을 뽑는 수시전형을 확대해온 대학들에 제동을 걸었다. 주요 사립대에게 ‘정시 확대’ 검토를 주문했다. 대학은 즉각 반응했다. 연세대가 지난 1일 이를 반영한 2020학년도 입학전형 계획안을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지금까지의 대입 기조 변화 신호탄으로 볼 수 있을까. 대중은 정시 확대를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축소와 맞물린 것으로 받아들인다. ‘공정한 수능 대 불공정한 학종’의 대립구도가 대중적 인식으로 자리잡은 탓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교육부 방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수험생·학부모의 가장 큰 관심사다.

2일 교육부와 대학, 입시업체 등 대입 관계자들 의견을 종합하면 교육 당국의 정시 확대 요구가 곧장 학종 축소로 이어진다고 보는 건 섣부른 예단이다. 당장 정부 의도대로 가장 빠르게 움직인 연세대도 정시와 함께 학종 선발인원을 늘렸다. 줄어든 것은 특기자·논술전형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교육공약부터 출범 이후 교육정책의 흐름을 되짚어보자. 정부는 당초 사교육 유발 요인이 큰 특기자·논술전형 축소 및 폐지를 공약했다. 이렇게 되면 수시 규모가 줄지만 반대급부로 정시를 늘리는 데 포인트를 두지는 않았다. 대학 자율에 맡겨 학생부전형 등으로 대체하겠다는 정도였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 적용, 고교학점제 도입 등 김상곤 장관 취임 후 교육부가 쏟아낸 정책들은 일관되게 수능 위주 정시의 축소 방향을 가리켰다. 그래서 이번 정시 확대 주문은 의외의 행보로 풀이된다. 그동안과 다른 신호를 보낸 탓이다.

교육부가 이러한 혼선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교육 당국의 움직임은, 전체 기조는 흔들지 않되 최근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학종의 지나친 확대를 막는 역할에 한정됐다고 보는 게 바람직하다. 서울의 한 대학 입학처장은 “명시적으로 학종을 줄이라는 얘기는 없었던 것 아니냐. 대학 입장에선 ‘확실한 사안’인 특기자·논술전형부터 손대지 않겠나”라고 귀띔했다.

앞서 교육부가 수시 수능최저학력기준 폐지를 권고한 것도 맥을 같이 한다. 수능 정시 강화에만 초점을 맞추면 정반대 움직임이다. 하지만 ‘학생부전형의 근간은 유지하면서 수시에서 정시 요소를 뺀다’는 측면에선 납득이 된다.

즉 이번 정시 확대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한 불’을 껐다고 보는 게 보다 합리적인 해석이다. 정부는 이미 평창동계올림에서 단일팀을 꾸리면서 공정성 논란을 겪은 바 있다. 여당 내에서는 학종 폐지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 악화된 대입 관련 여론을 안고 지방선거를 치르기는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입시전문가들은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정시 확대를 학종 축소로 보기는 힘들고, 학종 규모를 줄인다 해도 대폭 축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정시 확대와 수능최저기준 폐지가 2020학년도 입시부터 반영된다고 해도 2년짜리 대책에 불과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핵심은 올 8월 결정되는 2022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편.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포함해 수시·정시 통합, 각 입학전형의 운영 등 큰 틀이 이때 결정된다. 지방선거 이후다.

교육부가 추진해온 정책 기조 자체를 뒤엎었다기보다는 여론을 감안한 예외적 보완 행보로 평가하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급한 불 끄기’ 맥락에선 정시 확대를 수능 절대평가 무력화의 ‘전조’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과도한 해석이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서울 소재 대학의 입학처장은 “올 8월 큰 판을 앞두고 당국이 왜 이렇게 다른 신호로 해석되는 개입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짚었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이번 정시 확대, 수능최저기준 폐지는 8월에 있을 대입제도 개편과는 별개 조치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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