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배터리 게이트' 최대 규모 단체소송 비화
애플이 아이폰 성능을 고의로 저하시켰다는 이른바 ‘배터리 게이트’가 역대 최대 규모의 단체소송으로 이어졌다. 아이폰 사용자 6만3000여 명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국내 소비자 관련 소송 중 최대 참여 인원이다. 증권 분야로만 한정한 ‘집단소송제’를 소비자 분야로 확대하자는 의견이 제기된 시점이라 더 주목받고 있다.

◆“6만3767명에게 20만원씩 배상하라”

애플 '배터리 게이트' 최대 규모 단체소송 비화
법무법인 한누리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6만3767명을 원고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고 30일 밝혔다. 애플의 민법상 불법행위, 채무 불이행으로 인해 아이폰 손상과 함께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1인당 20만원, 총 127억5340만원 지급을 청구했다.

배터리 게이트는 애플이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리면서 불거졌다. 피해자들은 소장에서 “문제가 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설치하면 일정한 환경하에서 성능 저하가 일어난다는 사정을 잘 알면서도 배터리 결함 은폐, 고객이탈 방지, 후속 모델 판매 촉진 등을 위해 숨긴 채 배포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소비자기본법 위반이라는 게 한누리 측의 설명이다.

배터리 게이트가 불거진 작년 12월 이후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애플은 최소 59건에 달하는 집단소송을 당했다. 한국에서도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지난 1월과 이달 초 각각 122명, 401명의 소비자를 원고로 해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1인당 손해배상 청구액은 220만원이었다.

◆집단소송 대상 확대에 영향 미칠까

당초 소송 참여 의향을 밝힌 사람은 40만3722명에 달했다.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 위임계약을 체결하고 증빙서류를 제출받는 과정에서 원고가 6만여 명으로 줄었다는 게 한누리의 설명이다. 그래도 단일 소송 참여 인원으로는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지금까지는 2014년 신용카드 3사의 정보유출 손해배상 소송(당시 원고인단 5만5000여명)이 최대였다.

단체소송에서 승소해도 아이폰 사용자 모두에게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부정행위로 같은 피해를 입고 대표 당사자를 앞세워 판결을 받으면 효력이 피해자 모두에게 미치는 ‘집단소송제’는 현재 증권 관련 분야에만 도입돼 있다. 미국은 집단소송에 대해 명시적으로 효력 제외 신고를 하지 않은 모든 피해자에게 판결의 효력이 미치는 ‘옵트 아웃(opt-out)’ 방식의 소비자 집단소송제를 운영 중이다.

이번 소송은 국내의 ‘집단소송 대상 확대’ 목소리를 키울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22일 ‘법집행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논의를 통해 소비자 분야에도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무차별 집단소송 도입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찮다. 소송 제기 사실만으로 기업 신뢰도와 대외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막대한 소송비용으로 기업이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소송꾼들의 먹잇감이 돼 변호사만 좋아질 것이란 냉소가 적지 않다.

이상엽/이승우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