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농도 치솟아 '잿빛 한반도'…안개로 항공편 차질 잇따라
호흡기 질환 환자들로 병원 북새통…"이젠 공포, 휴일 지정해야"
"마스크 아닌 방독면이 필요해"… 미세먼지에 숨가쁜 월요일
사건팀 = 미세먼지가 대한민국 가슴팍을 짓누른 월요일이었다.

26일 오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에 들어간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다.

희뿌연 공기를 조금이라도 덜 마시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직장인들의 표정에서 한 주를 시작하는 활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의 반응은 '우려'보다는 '공포'에 가까웠다.

짙은 안개까지 겹치면서 하늘은 극도로 혼탁했다.

서울 도심에서 남산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공항에서는 항공기 결항·지연이 잇따랐다.

병원은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가득 찼고, SNS에서는 목 아픔, 기침, 눈 건조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글이 넘쳐났다.
"마스크 아닌 방독면이 필요해"… 미세먼지에 숨가쁜 월요일
◇ 미세먼지에 안개까지 '잿빛 한반도'
전국 곳곳에서 온종일 초미세먼지 농도가 치솟았다.

오전 9시 초미세먼지 일평균 농도는 서울 88㎍/㎥, 부산 53㎍/㎥, 광주 68㎍/㎥, 대전 55㎍/㎥, 경기 66㎍/㎥, 강원 52㎍/㎥, 충북 67㎍/㎥, 제주 56㎍/㎥ 등 '나쁨'(51∼100㎍/㎥) 수준에 해당했다.

오후 4시에도 일평균 PM2.5 농도는 서울 82㎍/㎥, 인천 55㎍/㎥, 경기 70㎍/㎥로, 모두 '나쁨' 수준을 넘었다.

특히 서울·경기는 전날 24시간 평균 PM-2.5 농도 99㎍/㎥, 102㎍/㎥를 기록해 2015년 관측 이래 역대 최악의 농도를 기록한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인천· 경기 등 수도권 3개 시·도는 이날에 이어 27일에도 '나쁨' 수준의 농도가 이어질 것이라며 공공부문 차량 2부제 등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했다.

이는 올해 1월 17∼18일에 이어 두 번째로 이틀 연속 시행하는 것이다
미세먼지에 안개까지 자욱해 가시거리가 짧아졌다.

같은 시각 해남에서 측정된 가시거리는 70m에 불과했다.

군산·세종·아산·철원 등에서도 100m 안팎으로 가시거리가 매우 짧았다.

인천공항에서는 전날 오후 내려진 저시정 경보가 이날 정오께까지 이어졌다.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던 항공기 11편이 오사카·김포·제주 등으로 회항했고, 출발 항공기 3편, 도착하는 항공기 9편 등 12편의 운항이 지연됐다.

김포공항은 24편이 지연됐고, 청주공항·무안공항·광주공항에서도 지연 운항이 잇따랐다.

또 목포항·완도항에서 62척의 여객선 운항이 통제되는 등 바닷길도 미세먼지에 막혔다.
"마스크 아닌 방독면이 필요해"… 미세먼지에 숨가쁜 월요일
◇ '미세먼지 공포'에 숨가쁜 시민들
"이 정도면 마스크가 아니라 방독면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웃지 못할 농담이 나올 정도로 시민들은 침울했다.

미세먼지를 들이마시며 월요일 출근길에 나서야 했던 시민들의 표정은 잿빛 하늘만큼이나 답답해 보였다.

이날 오전 출근 시간 서울 종로구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는 한 시민이 하차하자마자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 썼다.

마스크로 얼굴을 덮은 직장인들은 조금이라도 미세먼지를 덜 마시려고 종종걸음으로 출근길을 재촉했다.

평소 지하철을 타기 전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서울대입구역 근처 골목길에서는 이날은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광화문 거리에서는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녹색자전거봉사단연합 회원들이 '방독면'을 쓰고 대중교통 이용과 차량 2부제 등을 홍보했다.

직장인 박 모(29) 씨는 "미세먼지가 재앙 수준으로 방독면이 필요할 정도"라며 "흡사 광부가 된 것 같다.

시민들에게 마스크 쓰라고 강조하기 전 정부가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처 마스크를 준비하지 못한 시민들은 편의점으로 향했다.

급한 대로 '방한용' 마스크를 쓰거나 머플러로 코와 입 주변을 막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종로구 성균관 대성전에서 열린 제례의식인 춘기석전에서는 조선 시대 관복을 입은 참석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행사에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저감조치에 따라 차량 2부제가 시행되면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서울시교육청 등 공공기관 주차장은 텅텅 비었다.

서울청사관리소 직원은 "오전 6시부터 단속을 시작했는데, 오전 8시 30분까지 20대가량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이날부터 이틀간 서울광장에 새 잔디를 깔려고 했던 서울시는 미세먼지 농도가 올라가자 오전 10시부터 작업자 건강을 위해 작업을 중단했다.

경기도의 한 문화센터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놀이 수업을 하는 강사 박 모(32) 씨는 이날 오전 수업에 들어갔다 당황했다.

평소 20여 명의 아이들이 있어야 할 교실은 텅 비어 있었다.

박 씨는 "수업을 시작한 지 석달이 지났는데 한 명도 안 온 건 처음"이라면서 "옆 반에서는 어른을 대상으로 수업했는데 20명 정원에 3명 왔다고 하더라. 다들 미세먼지 공포 수준"이라고 말했다.
"마스크 아닌 방독면이 필요해"… 미세먼지에 숨가쁜 월요일
◇ 목 아프고 눈 마르고…병원 '북새통'
병원에는 호흡기 질환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이비인후과는 온종일 예약 전화가 걸려왔고 대기실에도 진료를 기다리는 이들로 가득 찼다.

이 병원 관계자는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을 보였던 지난주 토요일에만 하루 180명의 환자가 왔었다"면서 "오늘은 아침부터 목 아픔과 기침 증상 등을 호소하는 이들이 몰려들어 훨씬 더 바쁘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의 또 다른 이비인후과 관계자도 "평소 환자 수와 비교해 2배 수준"이라며 "지난 주말부터 유치원생이나 초·중학생 등 어린 환자들이 많아 쉬는 시간도 없을 지경"이라고 전했다.

트위터에는 미세먼지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는 글과 희뿌연 동네 하늘을 찍은 사진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irie_a****'는 "목 아프지, 눈 건조하지, 재채기·두통 때문에 앓아누웠다"고, '@sooi****'는 "미세먼지 속에 다녔더니 5배는 피곤하다"고 각각 썼다.

한 이용자는 "중국산 미세먼지 때문에 중국산 공기청정기를 사야 하는 것은 뭔가 당하는 것 같다"고 적었다.

◇ "대책 없으면 '휴일' 지정해야" 분통도
시민들은 고농도 미세먼지가 심각한데도 평소처럼 출근하고 등교해야 하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날은 정부가 휴일로 지정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구 모(36) 씨는 "외출을 자제하라고만 하지 말고 국가가 나서서 강제적으로 외출 금지를 하든지 공무원 휴업을 지시하든지 해야 한다"면서 "미세먼지가 매년 심해지는데 왜 해결을 못 하는지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고등학생 딸과 7살짜리 아들을 둔 이 모(43) 씨는 "딸아이 학교에서 미세먼지와 관련해 휴교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아내가 차를 몰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줬다"며 답답해했다.

아내와 맞벌이를 하는 학부모 김 모(38) 씨는 "미세먼지가 심해 애를 집에 놔두고 싶었었지만, 할 수 없이 어린이집에 보냈다"면서 "갑갑해서 쓰기 싫다는 아이에게 억지로 마스크를 씌우면서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6월 개정한 미세먼지 대응 실무 매뉴얼에 따라 각 시·도 교육청과 일선 학교가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 매뉴얼에 따르면 미세먼지 수준이 '나쁨' 이상일 경우 각 학교와 유치원은 바깥놀이·체육 활동·현장학습·운동회 등을 실내 활동으로 대체하는 등 실외수업을 자제해야 한다.

한편, 서울시가 이번에는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무료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것을 두고 아쉬워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성북구에 사는 전 모(35) 씨는 "무료 대중교통 정책을 철회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이번에는 무료가 아니라고 하니 '받았다 뺏긴'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마스크 아닌 방독면이 필요해"… 미세먼지에 숨가쁜 월요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