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태 서울대병원 명예교수(가운데)가 1988년 3월16일 국내 첫 간 이식 수술을 집도한 지 30년이 됐다. 사진은 당시 수술 장면.
김수태 서울대병원 명예교수(가운데)가 1988년 3월16일 국내 첫 간 이식 수술을 집도한 지 30년이 됐다. 사진은 당시 수술 장면.
‘88 서울올림픽’ 준비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1988년 3월16일 저녁. 월슨병으로 간 기능이 멈춘 14세 소녀가 서울대병원 수술대에 올랐다. 뇌종양이 진행돼 뇌사 상태에 빠진 한 소년의 간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기 위해서다. 국내 첫 간 이식 수술이었다. 수술은 김수태 서울대병원 명예교수가 맡았다. 10시간 넘는 대수술이 끝난 뒤 14세 소녀는 건강을 되찾았다. 아시아 첫 수술 성공 소식에 일본 언론까지 나서 대서특필했다.

30년이 지났다. 수술을 받았던 소녀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 산 간 이식 환자가 됐다. 걸음마 단계였던 한국의 간 이식 수술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수술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는 해외 의료진이 매년 늘고 있다. 이광웅 서울대병원 외과교수는 “간 이식 분야에서는 한국이 세계 의학을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태 서울대 명예교수 "국내 뇌사규정 없어 쇠고랑 찰 각오로 수술했죠"
◆국내 첫 간 이식 30년

서울대병원 외과는 지난 14일 국내 첫 간 이식 성공 3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만난 김 명예교수는 “당시 병원장도 반대해 성공하면 병원 몫, 실패하면 김수태 몫이라고까지 설득했다”고 회상했다. 법적, 제도적 기반이 아무것도 없던 때다. 뇌사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없었다. 심장이 뛰는 환자의 간을 떼면 살인죄로 처벌받을 위험이 높았다. 김 명예교수는 “수술이 잘못되면 쇠고랑을 차겠다”며 의료진의 마음을 다잡았다. 환자의 집안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수술비에 보태기 위해 김 명예교수는 사비까지 털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수술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1970~1971년 미국 유명 대학병원에서 신장 이식과 간 이식 관련 연수를 받으며 수술 기술을 익혔다. 한국으로 돌아와 개를 활용한 동물 수술을 꾸준히 했다. 1969년 7월 신장 이식에 성공한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수술에 성공한 뒤 김 명예교수는 한국 간 이식 수술의 역사가 됐다. 그는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도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배우던 나라에서 가르치는 나라로

한국은 유교 사상 때문에 뇌사자의 장기 기증을 꺼려 왔지만 첫 수술 성공을 계기로 다른 나라보다 생체 간 이식 분야가 발달했다. 1994년 이승규 아산의료원 원장은 살아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 수술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성공했다. 2000년에는 기증자 두 명의 간을 한 환자에게 이식하는 2 대 1 간이식도 성공했다.

간 이식 수술 기술이 개발되면서 수술 건수도 급격히 늘고 있다. 간 기능이 멈춘 간부전 환자뿐 아니라 암 환자도 이식으로 치료한다. 이식 환자 생존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 간 이식 환자 생존율은 1980~1990년대 76.8%였지만 2000년 이후 급격히 높아졌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주요 병원의 수술 성공률은 100%에 가깝다. 미국, 독일 등의 성공률은 85% 정도다. 이 때문에 국내 생체 간 이식 수술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의사들이 견학을 온다.

기증자 수술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간 이식 기증자 수술에 내시경을 활용한 복강경 수술을 도입했다. 복강경을 활용하면 수술 상처가 작고 기증자 피로도가 낮아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이 교수는 “기증자의 90% 정도는 복강경으로 수술한다”며 “13일 기준 복강경 기증자 수술을 186건 했는데 이는 세계 최고 기록”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