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공정한가
평창을 거치면서 공정성은 한국사회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평화’라는 명분에도 불공정 시비가 일었다. 남녀 스피드스케이팅 역시 파벌 싸움과 밀어주기 특혜 의혹으로 논란을 빚었다. 모두 결과의 좋고 나쁨보다 과정이 공정했는지를 중시했다.

올 8월 결정될 대입제도 개편에도 공정성 이슈는 잠복해 있다. 대입은 접촉면이 넓은 사안이다. 학생과 학부모는 이해당사자다. 일반 대중도 관심이 높다. 할 말도 많다. 성인이라면 대부분 그 과정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8월까지 가는 중간지점에는 6·13 지방선거가 자리했다. 교육감선거도 함께 치러진다.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관심, 여론의 트리거(방아쇠)까지. 대입을 소재로 공정성 논쟁이 폭발할 조건은 충분하다.

그동안 대입제도 개편을 위해 교육부가 운영한 대입정책포럼에선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편의상 압축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고교와 대학 관계자들은 대체로 학종을 긍정적으로 봤다. 고교는 공교육 정상화, 대학은 성적순 선발 탈피를 근거로 들었다. 학생과 학부모는 반대다.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이란 의구심이 여전하다. 선발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다. 평가자의 주관, 운 등의 요소가 개입될 여지도 크다고 봤다.

최근의 여러 조사와 연구에서 이러한 경향성은 반복 확인됐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학종의 대체재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꼽는 이가 많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다. 다면·정성평가인 학종은 눈에 보이는 점수로 당락을 가르기 어렵다. 반면 절대평가와 등급제라는 보완장치에도 불구하고 수능의 본질은 성적순 평가다. 이 과정에는 누구도 개입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공정하다.”
지난달 19일 서울교대에서 2021학년도 수능 출제범위 결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9일 서울교대에서 2021학년도 수능 출제범위 결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과연 수능은 공정한가? 이 명제가 논쟁의 전선(戰線)이 될 개연성이 높다.

학종을 지지하는 고교·대학 관계자 상당수는 “수능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강남 학생들이 유리한 시험이란 것이다. 수능 성적은 가정의 경제력과 그에 따른 사교육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들은 이 점을 문제 삼았다. ‘동일한 출발선’이 보장되지 않는데 수능 성적을 잣대로 평가하는 게 공정하다 할 수 있나?

학종을 비토(거부)하는 학생·학부모는 “그나마 수능이 공정하다”고 반박한다. 첫째, 명확성. 점수의 높고 낮음으로 당락이 결정된다. 둘째, 불개입성. 성적 외의 요소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리고 덧붙인다. “그러면 학종은 공정한가?”

왜 다를까. 뜯어보면 단초가 발견된다. 공정성이란 같은 용어를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사용한다. 이를 개념화해 학종 지지 고교·대학 그룹이 생각하는 공정성을 ‘배분적 정의’라고 하자. 학종 비토 학생·학부모 그룹이 말하는 공정성은 ‘과정적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배분적 정의는, 다른 출발선에 대한 ‘보정’을 수반한다. 이를테면 성적은 다소 떨어져도 저소득층, 사회적배려대상자 등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비중을 둬 평가하는 식이다. 단 학종이 배분적 정의에 부합하는 전형이라고 하긴 어렵다. 학종은 평가기준을 유연화하는 대입전형이지, 보정하는 전형은 아니다.

과정적 정의는,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에 대한 해외 연구에 따르면 “어떤 보상을 결정하는 과정이 공평했더라면 비록 그 보상이 부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결과를 수용하는 경향”을 띤다. 과정을 대입전형, 보상을 대입 결과로 치환하면 이해가 쉽다. 수능 성적이란 명확한 잣대로, 여타 요소의 개입이 없는 객관적 입시가 치러진다면, 설령 수능 점수에 경제력과 사교육의 영향이 크다 해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수능이냐, 학종이냐. 공정한가, 불공정한가. 이때 공정성이란 배분적 정의인가, 과정적 정의인가. 궁극적으로 우리는 지금 ‘어떤’ 공정성을 추구할 것인가. 이 같이 상이한 인식을 정확히 개념화해 대중의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모으는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왕 1년 유예한 대입제도 개편 논의가 도돌이표 소모적 논쟁에 그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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