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절세, 탈세, 조세회피는 세법 적용 및 해석에 따라 교도소 안과 밖을 넘나드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절세는 합법적으로 세금을 절약하는 것이고, 탈세는 세법을 위반해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며, 조세회피는 절세와 탈세의 중간에 있는 행위로 불법(탈세)은 아니지만 세법의 빈틈을 이용해 세금을 덜 내는 것이다. 조세회피가 성공하면 절세가 되고 실패하면 탈세가 되기 때문에 현실에서 절세와 조세회피를 구분하기 어렵고 분쟁 끝에 법원 판결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절세 위한 교차증여는 직접증여"… 과세기준 명문화해야
최근 높은 세율의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해 절세라는 명목 아래 공격적인 조세회피 전략을 세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증여세는 누진세 구조여서 여러 사람이 재산을 쪼개서 받으면 더 낮은 세율이 적용돼 세금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교차증여가 대표적인 절세 수단이었다.

교차증여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2억원을 자신의 자녀에게 증여하려는 형이 역시 2억원을 자신의 자녀에게 증여하려는 동생과 상의해 각각 자신의 자녀에게 1억원을 증여한 직후 서로의 조카에게 1억원을 증여한다면 세부담을 600만원씩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교차증여를 이용해 절세하던 납세자 관행에 과세관청이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해 과세한 사건이 발생했다. 구(舊)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은 제2조 제4항에서 제3자를 개입시키거나 여러 단계의 거래를 거치는 등의 방법으로 증여세를 부당하게 감소시키는 조세회피행위에 그 경제적 실질에 따라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실질과세원칙을 규정하고 있었는데, 교차증여 과세사건에 이 규정을 적용해 최초로 국세청이 승소한 판결이 ‘대법원 2017년 2월15일 선고 2015두46963 판결’이다.

[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절세 위한 교차증여는 직접증여"… 과세기준 명문화해야
이 사건에서 A는 2010년께 원고인 자녀와 외손 자녀에게 증여를 원했고, 마침 A의 여동생(B)도 자녀들에게 주식을 증여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조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서로의 후손에게 교차로 증여하기로 했다.

특히 직계후손에게 증여하기보다 상대방의 직계후손에게 교차증여하는 경우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다는 세무사 조언에 따라 A는 같은 해 12월 자신의 자녀와 손주 등 7명(원고 1~7)에게 총 2만2840주를 증여하면서 동시에 조카 2명(원고 8, 9)에게도 총 1만6000주를 증여했다. A의 여동생 부부(B, C)도 자녀 2명에게 1만2000주를 증여하면서 동시에 A의 자손 7명에게 1만6000주를 증여했다.

“절세 관행” vs “조세회피 목적”

이에 대해 과세관청(피고)은 이 사건 ‘교차증여’로 실질적 이익이 각자의 자녀에게 돌아가 A가 자신의 직계후손인 원고 1~7에게 합계 1만6000주를 직접 증여하고, B와 C 부부가 그 자녀인 원고 8, 9에게 합계 1만6000주를 직접 증여한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원고 1~7에 대해서는 B와 C로부터 받은 증여분을 A로부터 받은 증여분에 포함시키고 원고 8, 9에 대해서는 A로부터 받은 증여분을 절반으로 배분해 각각 B와 C로부터 받은 증여분에 포함시켜 증여세를 부과했다.

교차증여는 세무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절세 방법 중 하나였다. 즉, 불법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세청이 이들의 교차증여 행위를 편법으로 간주해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반발한 원고들은 교차증여에 대한 예규 등을 토대로 합법적 절세로 인정돼 온 관행을 신뢰해 교차증여했다며 과세처분 취소를 요구했다. 과세당국이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법령해석을 바탕으로 과세해 잘못됐다는 것이다.

과세관청은 납세자가 제3자를 이용해 부당한 목적으로 증여세를 감소시키려 했다고 반박하며, 원고들의 교차증여 행위는 증여세를 감소시키려는 목적 외에 합리적인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남매간인 A와 B 등이 자녀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같은 주식 수만을 증여하도록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에 주목했고, 이 교차증여는 직접증여와 같은 효과를 얻으면서 원고들의 증여세를 부당하게 감소시키려는 목적에서 이뤄진 것으로 판단했다.

법형식 이면의 ‘경제적 실질’ 주목

대법원은 구 상증세법 제2조 제4항에 따라 당사자가 거친 여러 단계의 거래 등 법적 형식 또는 관계를 재구성해 직접적인 하나의 거래에 의한 증여로 보고 증여세 과세 대상에 해당한다고 하려면,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거래의 법적 형식이나 과정이 처음부터 조세회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해 그 재산 이전의 실질이 직접적인 증여를 한 것과 같게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당사자가 그와 같은 거래 형식을 취한 목적 △제3자를 개입시키거나 단계별 거래 과정을 거친 경위 △그와 같은 거래 방식을 취한 것에 조세 부담 경감 외 사업상 필요 등 다른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 등 관련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이 사건에서 증여자 A, B, C는 조카 등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증여세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만 있는 교차증여를 그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교차증여를 그 실질에 맞게 직접증여로 재구성해 원고들에게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실질과세원칙 따라 거래의 재구성 가능

대법원 판례는 납세자가 선택한 법형식의 사법상 효력을 부정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고, 세법 적용에 한해서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해 법형식 이면(裏面)의 경제적 실질에 따르고 있다. 교차증여의 동기가 증여세 절감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증여자들이 각자 소유한 주식 중 일부를 상대방의 직계후손에게 증여한 것 자체는 그들의 진정한 의사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므로, 그 거래의 사법상 효력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세회피를 위해 선택한 법형식을 재구성하는 데에는 사법상 효력이 부인되는 가장행위(假裝行爲)일 것까지는 필요하지 않고, 조세법적 관점에서 실질과세원칙 적용에 따라 거래의 재구성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판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절세와 조세회피는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규정상 관행 및 적용례를 신뢰하는 납세자는 뜻하지 않은 세금을 부담하게 될 수 있다. 납세자의 예측가능성 측면에서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부합되도록 조세회피방지 규정의 적용 요건을 구체적으로 법률에 규정해야 할 것이다.

● 교차증여 목적이 조세회피 아니었다면 판결 달라졌을 수도

조세회피방지를 위한 실질과세원칙의 적용 요건은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교차증여를 직접증여로 재구성해서 한 증여세부과처분 취소를 구한 사건(2015두46963)의 대법원 판례도 실질과세원칙의 적용상 가이드라인을 충분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 “세법의 혜택을 부당하게 받는 것”의 의미가 ‘경제적 실질이 없는 가장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합리적인 경제인이라면 선택할 통상적인 거래 형식을 선택하지 않아 조세혜택을 본 것’을 의미하는지는 판례상 후자임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둘째, 조세회피가 해당 행위 또는 거래를 영위한 유일한 목적이어야 하는지 의문시된다. “…혜택을 부당하게 받기 위한 것”이라고 해서 ‘목적’을 규정의 적용 요건으로 하고 있는데, 해당 거래 행위의 목적이 ‘오로지 조세회피에 있을 때’만 적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해당 거래의 ‘주된 목적이 조세회피’면 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이 사건에서 증여자들이 경영상 다른 목적이 있었고 교차증여의 주된 목적이 조세회피가 아니었다면 판결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