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의 한 강의실 앞. 정수기 주변 쓰레기가 넘쳐흐른 채 방치되고 있다. / 사진=동국대 제공
동국대의 한 강의실 앞. 정수기 주변 쓰레기가 넘쳐흐른 채 방치되고 있다. / 사진=동국대 제공
동국대 본부와 청소노동자 간 대립으로 한 달 넘게 캠퍼스 곳곳에 쌓인 쓰레기가 방치되자 동문들이 나서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학교 재정부담과 간접고용 노동자의 고용보장, 대체인력 투입 문제까지 얽혀 평행선을 달리는 형국이다.

◆ 총동창회 성명 "불법점거 풀고 대화 임하라"

동국대 총동창회는 9일 ‘불법파업 미화원들은 동국대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현 사태를 해결하라’ 제하 성명을 내고 “민주노총 소속 미화원들의 불법 점거농성에 유감을 표명한다. 이 불미스러운 사태가 상식과 이성에 기반해 조속히 해결될 수 있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총동창회는 이 같은 입장을 밝힌 배경으로 “사회적 약자인 미화원들의 근로여건과 모교의 재정현황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봤지만 쓰레기 무단투기 등 불법파업·농성 중인 미화원들의 비상식적·파괴적 행태들을 목격했다”면서 “후배들 학습권이 침해당하고 학사일정이 차질을 빚는 현 상황을 지켜만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총동창회는 청소노동자들을 겨냥해 “학생들 학습권을 담보로 불법행위를 자행하지 말라. 합법적 절차와 상식적 방법을 통해 의견을 피력하고 학교와의 대화의 장에 나서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학교 당국을 향해서는 “쓰레기를 깨끗하게 정비해 면학분위기를 조성하라”고 당부했다.

민주노총 소속 동국대 청소노동자 47명은 지난 1월29일부터 40일째 학교 본관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돼도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없자 동문들이 나선 것이다. 정환민 총동창회 사무총장은 “모교의 쓰레기를 직접 치우러 가겠다는 동문까지 있다”고 귀띔했다.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들은 쓰레기를 치우지 못하도록 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 사진=동국대 제공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들은 쓰레기를 치우지 못하도록 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 사진=동국대 제공
◆ "재정난 누적… 고리 끊어야" vs "노조파괴"

학교가 청소노동자 86명 가운데 정년퇴임하는 8명에 대한 신규채용을 하지 않은 게 발단이었다. 동국대는 재정부담 탓에 청소 근로장학생으로 대체키로 했다. 노조는 ‘고용위협’과 ‘노조 파괴 시도’로 받아들였다. 퇴임 인원만큼의 신규채용을 주장하며 학교와 대립각을 세웠다.

노조는 앞서 발표한 성명에서 “앞으로 발생하는 결원을 ‘알바’로 메워 모든 노동자를 없애려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 설명은 달랐다. 동국대 관계자는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다. 재정부담 때문에 적정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것이지, 모두 근로장학생으로 대체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학교 입장에서는 수년간 등록금 동결·인하로 수입은 줄고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인해 지출은 늘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는 항변이다. 노조는 “적립금이라도 풀어 신규채용 하라”고 맞섰고, 학교 측은 “적립 목적과 다르게 용역비로 쓸 수는 없다”고 재반박했다.

한 동국대 교수는 “청소노동자 8명 충원 않고 근로장학생 써서 아끼는 돈이 기껏 몇천만원 수준이다. 학교가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시급 100원만 올라도 연간 예산은 3000만원 가까이 늘어난다.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일까. 정년퇴임 8명을 포함한 동국대 청소·경비노동자 109명의 시급이 100원씩 인상되면 추가 부담분은 2734만원(월 209시간씩 12개월 근무 기준)으로 계산된다. 학교 측 설명에 대체로 부합한다. 올해 최저임금인 시급 7530원 또는 여타 대학의 청소노동자 시급 7780원을 기준 삼으면 지금보다 400~700원 가량 올라 최대 2억원 정도 추가 부담해야 한다.
동국대 직원들이 청소하려 하자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들이 막아서는 모습. / 사진=동국대 제공
동국대 직원들이 청소하려 하자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들이 막아서는 모습. / 사진=동국대 제공
◆ 청소하겠다는 직원, '파업 무력화'라는 노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동국대 캠퍼스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가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건 당연하지만, 보다 못한 학교 직원이 쓰레기를 치우려는 것까지 막아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대학 직원은 “학기가 시작됐으니 쌓인 쓰레기는 치우고 학생들이 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느냐. 직원들이 청소까지 못하게 막는 건 너무한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청소노동자들은 직원들의 모욕적 언사로 물리적 충돌을 빚는 등 문제를 키웠다고 반박했다.

감정적 대립을 걷어내고 보면 ‘대체인력 투입’이 쟁점이다. 청소노동자들이 쓰레기를 치우려는 학교 직원들을 방해하는 것은 파업 무력화를 우려하기 때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43조)은 일부 필수공익사업장을 제외하면 쟁의행위 기간 중 사용자의 대체인력 투입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원청은 사용자가 아니므로 대체인력 투입금지 조항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행정해석을 유지해왔다. 법리적으로는, 간접고용 형태인 동국대도 사용자가 아니어서 대체인력을 투입해 청소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동국대가 ‘사실상 사용자’라면 대체인력 투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국대 한 교수는 “법리로 다투기보다는 ‘대화에 임하겠다’는 전제로 쓰레기부터 청소하고,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해 합의점을 찾아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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