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인종차별 저항의 상징 로드니 킹
1991년 3월3일 밤 12시30분께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근교 210번 고속도로를 달리던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이 속도위반으로 경찰에 걸렸다. 경찰의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달리다 붙잡힌 킹은 백인 경찰관에게 무자비하게 얻어맞았다. 이 사건은 인근 캠코더에 찍혀 다음날 TV로 방송됐다.

킹을 구타한 백인 경찰관 4명은 이듬해인 1992년 4월29일 재판에서 무죄 평결을 받았다. 배심원단 12명 중 10명이 백인, 나머지는 스페인계와 아시아계였다. 무죄 소식이 전해지자 LA 지역 흑인들은 거리를 뛰쳐나와 상점을 습격하고 약탈과 방화를 저질렀다. LA 거주 한인이 큰 피해를 본 ‘LA 폭동’의 시작이었다.

이날부터 5월4일까지 약 1주일간 흑인 거주 지역과 가까운 LA 한인타운에 치안 부재의 무정부 상태가 이어졌다. 63명이 사망하고, 2300여 명이 다쳤다. 1만2000여 명이 체포되고, 10억달러가량 재산상 손실이 발생했다.

킹은 ‘인종차별 저항의 상징’이 됐다. 380만달러의 보상금도 받았다. 그러나 이후의 삶은 평탄치 못했다. 두통에 시달리고 다리를 저는 등 폭행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손대는 사업마다 망해 보상금을 탕진하고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했다. 가정폭력과 음주운전, 과속운전 등으로 경찰에 11차례나 체포됐다. 두 번 이혼하고 세 번째 결혼을 앞두고 있던 그는 LA 폭동 20주년이던 1992년 6월 자신의 집 수영장에서 익사한 채 발견됐다. 그의 나이 불과 47세였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