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진(왼쪽부터), 오태석, 조재현, 김석만.
윤호진(왼쪽부터), 오태석, 조재현, 김석만.
공연계와 방송가가 ‘미 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지목된 가해자들로 인해 거센 후폭풍에 직면했다. 연출가 윤호진·오태석, 배우 조재현·조민기 등이 제작·출연하는 공연과 드라마가 원래 일정대로 무대에 오르거나 전파를 타기 어렵게 돼서다.

26일 공연계에 따르면 “성범죄자가 관련된 공연은 소비하지 않겠다”는 관객들의 예매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뮤지컬 ‘명성황후’ 입장권을 예매한 한 네티즌은 “도저히 볼 수 없어서 예매를 취소했다”고 말했다. 명성황후는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윤호진 연출가가 대표를 맡고 있는 에이콤의 작품이다. 에이콤은 이날 윤 대표가 이 작품 연출에서 빠진다고 발표했지만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공연계 관계자는 “연출이 바뀌어도 윤 대표가 설립·운영해온 에이콤이 공연하는 거라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에이콤은 관객이 예매를 취소한 뒤 취소수수료 환불을 요청해오면 응해주기로 했다.

윤 대표가 연말에 공연할 예정이었던 뮤지컬 ‘웬즈데이’도 된서리를 맞았다. 이 뮤지컬은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윤 대표가 제작하는 것은 위선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공연을 취소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온다. 에이콤 측은 “연말에 공연을 예정대로 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오태석 연출로 극단 목화가 내달 15~25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올릴 예정이던 ‘모래시계’는 공연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이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예술가들의 신작 창작을 독려하는 사업 ‘2017 공연예술 창작산실’에 선정돼 1억원을 지원받아 제작됐다. 최근 오 연출의 제자·배우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문예위는 지난 22일 목화 측에 의혹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실태조사 공문을 보냈다. 문예위는 공연을 취소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법리 검토를 진행 중이다.

‘미 투’로 지목된 배우들이 출연 중이거나 예정인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사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tvN 드라마 ‘크로스’는 총 16화 중 8화를 내보낸 상태에서 ‘투 톱’ 캐릭터 중 한 명을 도중에 없애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배우 고경표(강인규 역)와 양대 주역으로 캐스팅돼 극 중 고정훈 역을 연기하던 배우 조재현이 지난 24일 드라마에서 하차하겠다는 견해를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크로스’ 제작진은 “이미 촬영한 9~10화는 조씨의 촬영분을 최대한 편집하고 향후 회차에 대해선 조씨의 캐릭터를 빠르게 퇴장시키는 방향으로 극본을 수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우 조민기가 등장하는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을 지난 24일부터 방송할 예정이었던 OCN은 첫 방송 3일 전 편성 일자를 급거 변경했다. 제작사 관계자는 “조민기가 할 예정이었던 국한주 역을 배우 이재용이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배우 오달수는 성추행 의혹에 이어 이날 성폭행까지 했다는 추가 폭로에 대해 모두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오달수가 이날 오전 성추행 의혹을 부인하자 성추행 피해 당사자라고 밝힌 A씨는 이날 오후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오씨가 성폭행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오씨의 소속사 스타빌리지엔터테인먼트 측은 “새로 폭로된 의혹 역시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유명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도 후배 작가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날 한 방송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는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는 과정에서 박 화백에게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박 화백은 이에 대해 “기억이 없다”며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

마지혜/양병훈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