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담배냄새 숨기려다 '바람난 남편' 오해 사기도
출판사에 다니는 김 대리는 요즘 어디를 가도 젓가락을 빼놓지 않는다. 담배를 피울 때 이용하기 위해서다. 손가락에 냄새가 배지 않는 흡연법을 고민하던 김 대리에게 직장 동료는 “젓가락으로 잡고 피워보라”고 추천했다. 그는 몇주 전부터 ‘젓가락 흡연자’가 됐다.

김 대리는 생후 100일 된 아이와 아내를 위해 올초 금연을 선언했다. 아내에게 “담배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지만 담배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1주일 만에 결국 다시 담배를 물었다. 그는 “냄새가 거의 안 난다는 궐련형 전자담배로도 갈아타봤지만 옛 담배 맛을 잊을 수 없었다”며 “아내에게 들키지 않도록 당분간 젓가락으로 버텨볼 생각”이라고 했다.

새해 세운 금연 계획에 실패한 뒤 설을 맞아 또다시 금연을 약속하는 직장인이 늘어나는 때다. 의료계에서는 전문적인 도움 없이 혼자 금연하는 사람의 성공률은 3~5%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매년 1월1일 담배를 끊었던 사람 열 명 중 아홉 명이 한 달 뒤 다시 편의점을 찾아 담배를 사간다는 통계도 있다. 금연이 그만큼 어려운 도전이라는 의미다. 상사 스트레스와 극심한 금단 현상은 직장의 금연 결심을 흐트러뜨리는 주요인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금연 도전 실패기와 성공기를 들어봤다.

극심한 금단 현상에 다시 문 담배

건설회사에 다니는 윤 과장은 새해를 맞아 한 해 계획을 금연에서 운동으로 바꿨다. 담배를 끊은 뒤 찾아온 극심한 금단 현상을 버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년간 담배를 피운 그는 사내에서도 유명한 ‘헤비 스모커’다. 하루 담배 세 갑은 거뜬히 피웠다. 지난해 말 건강검진에서 ‘폐 건강을 위해 금연하라’는 조언을 들은 그는 올초 금연 계획을 세우고 담배를 끊어봤다. 하지만 계획은 사흘 만에 물거품이 됐다. 담배를 참는 낮 시간보다 괴로운 건 밤마다 찾아오는 악몽이었다. 잠이 들면 누군가 목을 조르는 악몽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이틀 연속 같은 꿈을 꾸고 난 뒤 그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악몽을 꿀까봐 겁이 나 잠자리에 드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담배를 물었습니다. 피우면서도 찝찝한 기분에 음력 설을 맞아 금연 대신 운동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아내와의 약속을 깨고 담배를 피운 뒤 이를 숨기려다 아찔한 경험을 한 직장인도 있다. 결혼 4개월차 늦깎이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는 신 과장은 하루 한 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야근을 마친 밤 ‘딱 한 대만 피우자’며 담배를 문 게 화근이었다. 가글을 하고 손을 씻었는데도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아내의 호통이 두려웠던 그는 회사 근처 사우나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샤워를 한 뒤 ‘완전 범죄’를 꿈꾸며 집으로 들어선 순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디 있다가 왔길래 씻고 왔느냐”며 추궁하는 아내에게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던 것. 그는 “담배 한 대가 외도 누명으로 연결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오해는 풀렸지만 아내의 의심이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찝찝하다”고 했다.

직장 상사의 흡연 여부에 따라 희비 엇갈려

어렵게 성공한 금연 계획이 직장 상사 때문에 흐지부지되기도 한다. 지난해 6개월간 금연에 성공했던 박 대리는 남들이 모두 금연 계획을 세우는 연초 다시 담배를 피우기로 결심했다. 인사이동으로 옮긴 부서의 새 상사 때문이다. 박 대리의 부장은 휴식 시간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마다 후배 직원들을 대동했다. 그의 총애를 받는 직원은 대부분 ‘흡연 이너서클’이었다. 박 대리는 “금연하는 사람이 늘면서 오히려 흡연자들만의 이너서클은 더 끈끈해졌다”며 “회사생활을 편히 하려면 직장 상사 분위기에 맞춰야지 어쩌겠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금연을 시작한 직장 상사를 만나더라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증권사에 다니는 이 대리의 팀장은 담배를 끊은 뒤 금단 증상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화가 늘었다. 이전에는 문제삼지 않던 문서 양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재작성을 요구하고 커피 농도가 짙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담배를 끊었더니 술이 잘 들어간다”는 이유로 회식 자리가 길어진 것도 부담이다. 이 대리는 “예전엔 팀장과 담배를 함께 피우면서 업무 중 하기 어려웠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못하게 됐다”며 “부서원 사이에서 팀장 재흡연 프로젝트를 시작하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했다.

매년 금연을 시도했다 실패하길 반복하는 ‘무늬만 금연자’를 바라보는 흡연자의 시각도 곱지만은 않다. 20년차 흡연자인 정 과장에게는 연초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무늬만 금연자’들이 눈엣가시다. 이들은 매년 1월1일이 되면 금연을 선언하고 “앞으로 담배를 사지 않겠다”며 서랍 곳곳에 뒀던 담배를 모두 휴지통에 버린다. 하지만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은 드물다. 다시 담배 생각이 날 때면 흡연자인 정 과장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한 대만 빌려달라고 요구한다. 동기나 후배는 적당히 거절하고 말지만 상사에게는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어렵다. 설이 지난 뒤 직장에 복귀했더니 또다시 금연하겠다며 소문을 내고 다닌다. “담배가 아까운 것도 아까운 거지만, 솔직히 얄밉습니다. 맡겨 놓은 것처럼 담배를 꿔가면서 곤란한 낯이라도 보이면 ‘쪼잔하게 왜 이러느냐’며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니, 어떻게 스트레스를 안 받겠습니까.”

“새해는 설부터, 이번에는 끊고 싶어요”

이처럼 어려운 금연이지만 굳은 결심 끝에 성공하는 직장인도 있다. 중견 가구업체에서 일하는 김 과장은 20년 만에 금연에 도전해 한 달 넘게 담배를 입에 대지 않고 있다. 고교 동창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남의 얘기 같지 않아서다. 30대 후반인 김 과장의 동창은 친구들 사이에서 ‘골초’로 유명했다. 김 과장은 자신도 친구처럼 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곧 마흔이 되다 보니 여기저기 아프다는 친구들 소식이 자주 들린다”며 “친한 친구가 큰 병에 걸렸다고 하니 담배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신종 담배로 금연을 시도하기도 한다. 건설사에 근무하는 전 대리는 올초 궐련형 전자담배를 샀다. 이 담배를 피우다가 금연에 성공했다는 친구 얘기를 듣고서다. 매년 금연과 흡연을 반복해온 전 대리는 지난해에도 금연을 결심했다가 실패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설날까지만 전자담배를 피웠다. “설 명절 부모님을 뵈러 내려가는 길부터 전자담배도 끊었습니다. 금연클리닉에도 등록할 생각이에요. 이번에는 정말 끊고 싶습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