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신입도, 사수도 버틸 수 없는 근무환경이 태움 만들어"
'태움'에 몸살 앓는 간호사… 신입 이직률 34% 달해
"2005년 화순전남대병원에서 간호사 2명이 잇따라 자살한 지 햇수로만 벌써 1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때랑 똑같습니다.

단순히 한 병원의 조직 문화가 아니라 허덕이는 간호인력, 처우, 실습병원 부족에 따른 미숙련 등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일어난 간호사 자살 사건이 간호업계의 고질적인 '태움'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과 관련, 김소선 서울시간호사회 회장(연세대 간호대학 교수)은 1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번 사건이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와 연관성이 있는지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밝혀져야겠지만 이 기회에 근본 문제를 따져 개선책을 모색해야 한다는게 간호업계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신입 간호사 1년 평균이직률 34%…훈련이 '분풀이' 수단 되기도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방식과 그런 문화를 지칭하는 용어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표현에서 유래했다.

교육이라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이는 직장 내 괴롭힘과 다를 바 없다고 일선 간호사들은 설명한다.

신규 간호사들은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오는 업무 스트레스에 태움까지 더해져 이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5년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경력 1년 미만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33.9%에 달했다.

3명 중 1명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태움은 '시스템'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대개 신규 간호사는 선배 간호사인 프리셉터(preceptor)와 항상 함께 다니면서 일을 배우는데, 절대적으로 간호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을 가르친다'는 행위 자체가 조직에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실제 2016년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지에 실린 '간호사의 태움 체험에 관한 질적 연구'(정선화·이인숙) 논문에 따르면 선임 간호사 역시 신규 배치되는 간호사와 근무하는 데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연구에 참여한 한 선임 간호사는 "일을 잘 모르는 신규와 일을 하면 신규 일을 내가 다 커버해주면서 해야 하니까 나도 너무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간호사의 업무 자체가 환자 안전에 직결되므로 엄격한 교육과 역량 강화는 불가피하지만 현 태움이 과도하게 감정적인 방향으로 표출된다는 지적도 있다.

옷 입는 걸 지적하거나, 선임의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논문에서 태움을 겪었다는 또 다른 간호사는 "사고를 치면 안되니까 태움이 적당히 있기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면서도 "적당한 건 필요한데, 그게 일할 때 말고도 그 사람이 미워서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 전문가 "노동환경 개선·실습중심 교육제도 필요"

전문가들은 간호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병원의 지원부족, 허술한 교육시스템을 원인으로 꼽는다.

김소선 회장은 "실습 미비 등으로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간호사들이 현장에 바로 투입되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이 때문에 금세 병원을 떠나면서 남아있는 사람들이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노출되는 등 구조적인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규 간호사에 대한 교육 기간을 확충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등 개인이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스미 서울대 간호대학 학장 역시 "간호인력 배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교가 실습병원을 갖추지 않은 채 강의에만 의존하는 등 실습이 미비한 편"이라며 "실습 강화 등을 통해 현장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간호사 자격증을 보유한 유휴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봤다.

최 학장은 "현재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은 30만명에 이르지만 실제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13~14만 명에 불과하다"며 "다년간 경력을 쌓은 우수한 간호사가 의료현장에 계속 남아있을 수 있도록 전반적인 처우를 개선하고, 일을 쉬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