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의 역설 (1) 교육 복지 '부메랑'

대졸 실업자 50만명 넘어
실업률도 대졸 > 고졸 역전
청년부채 증가율 역대 최고

대학 경쟁력은 '뚝뚝'
복지로 접근한 교육 황폐화
대학들 비용절감만 매달려
200명 이상 수강 대형강의↑
외국인 전임교원은 줄어

"지방대 연구장비·실험실… 고등학교보다 못한 곳도"
지난 13일 서울의 한 사립대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이 취업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지난 13일 서울의 한 사립대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이 취업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지방의 A 국립대는 최근 몇 년간 자퇴자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3학년에 올라가기 직전 겨울방학이면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학생들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자퇴의 이유는 학력란에 ‘대졸’을 넣지 않기 위해서다. 학생들이 갈 수 있는 버젓한 직장은 인근 여수산업단지 정도인데 생산직엔 고졸만 들어갈 수 있다. 사무직은 ‘인(in) 서울’ 대학 출신들에 밀려 언감생심이다. ‘대학 붕괴’의 현주소다. ‘누구나 싼값에’ 졸업장을 얻을 기회는 많아졌지만 정작 졸업장의 ‘상품 가치’는 바닥에 떨어졌다.

◆세계 1위 대학 진학률이지만…

올초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대졸 실업자는 50만2000명에 달했다. 실업률은 4.0%로 고졸 실업률(3.8%)을 웃돌았다. 2000년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30세 미만 ‘청년 부채’도 매년 급증세다.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 부채 증가율은 41.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적성 불문, 무조건 대학 진입을 강요당한 결과다. 지난해 대학 진학률은 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 평가되는 미국(46%), 독일(28%) 등의 선진국을 훨씬 앞선다. 대학이 700여 개에 달해 ‘대학 과잉’으로 고민인 일본조차 대학 진학률은 37%에 불과하다.

인공지능(AI)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고등교육 이수자의 비율이 높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 1위인 대학 진학률을 긍정적인 지표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연간 약 50만 명에 달하는 대졸자가 배출되지만 이들이 들어갈 만한 일자리는 약 30만 개에 불과하다.

미국만 해도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고급 인력을 수용할 글로벌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나왔지만 한국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이현청 한양대 고등교육연구소장은 “한국은 세계에서 학력 인플레가 가장 심각한 나라”라며 “대학 졸업장은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됐지만 딱히 쓸 데 없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열악해진 대학 교육… 연세대, 연구장비 고칠 돈 없어 서울대 가서 실험

◆대학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져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엔 ‘대학 붕괴’가 자리잡고 있다. ‘교육 복지’의 관점에서 시행된 정부의 대학정책은 한국의 대학을 황폐화시켰다. 2011년부터 본격화된 ‘반값 등록금’ 정책 시행이 직격탄이 됐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립대의 지난해 등록금은 2011년과 비교해 11.2%, 국립대는 15.3% 감소했다. 정부의 가격 개입은 대학의 경영원리를 바꿔놨다.

등록금 의존율이 62%(사립대, 2016년 기준)에 달하는 상황에서 주 수입원을 틀어막자 대학은 비용 절감에 골몰했다. 교수 연봉은 2011년 이후 대부분 동결됐다. 한 강의에 수강생 200명 이상을 받는 대형 강의도 늘렸다. 지난해 전국 4년제 대학의 대형 강의는 2015년 대비 34% 증가했다. 국제화지수도 뒷걸음질 쳤다. 외국인 전임교원이 2015년 5957명에서 작년엔 5509명으로 7.5% 줄었다.

한국 대학의 민낯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은 연구실이다. 10년 가까이 수입이 줄다 보니 서울의 ‘명문’ 사학들조차 낡은 연구장비를 고칠 돈이 없어 전전긍긍할 정도다. 연세대 공대 석사 2년 차인 윤모씨는 “논문을 쓰기 위해 필수적인 실험 장비가 고장났는데 학과에 돈이 없어 1년간 방치했다”며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서울대에 가서 실험을 마쳤다”고 말했다.

◆열악한 ‘연구 인프라’

수도권에 있는 A대학의 교수는 “정보기술(IT) 분야 실험에선 필수 장비인 오슬로스코프(대당 1000만원)를 실험조당 4명 이상이 사용한다”며 “적정 사용 인원이 2명이어서 결국 실험하는 건 한두 명 학생이고 나머지는 구경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방의 한 사립대 교수는 “대학 인근에 꽤 잘나가는 과학고가 있는데 실험실 장비가 제법 잘 갖춰져 있는 것에 깜짝 놀랐다”며 “지방대는 국립이건 사립이건 상관없이 실험실 여건이 고등학교보다 못하다는 게 과장만은 아니다”고 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16년 전체 사립대의 연구 인프라(기계기구매입·연구·실험실습) 지출액은 9573억원으로 2011년(1조1164억원) 대비 14.2% 감소했다.

도서관 여건도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대학들이 도서 구입비에 쓰는 비용(2016년, 2011년 대비 8.2% 감소)을 줄인 탓이다. 서강대 관계자는 “예산은 동결돼 있는데 해외 저널 구독료는 매년 오른다”며 “몇몇 저널은 구독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학은 전자 논문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언스다이렉트(Science Direct) 등 업체들과 구독료 협상을 벌이고 있다. 대교협 관계자는 “최대 12%까지 구독료를 올려달라는 요구에 협상이 결렬된 상태”라며 “구독 종(種) 수가 줄어들면 장기적으론 연구 기반을 크게 침식할 가능성이 높다”고 아쉬워했다.

■ 70%

한국의 대졸자 비율(2016년 기준, 25~34세 시민 중 대학 졸업 이상 학력자 비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43%는 물론 미국(48%) 프랑스(44%) 일본(60%) 등 주요 국가와 비교해도 높다.


박동휘 기자/이건희 인턴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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