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헨공대에서 지난해 열린 ‘전기차데이’가 기업, 정부, 대학에서 온 관람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성황을 이뤘다. 아헨공대에는 전기차 E·go 모바일을 하루 6대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들어서 있다.  아헨공대 제공
독일 아헨공대에서 지난해 열린 ‘전기차데이’가 기업, 정부, 대학에서 온 관람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성황을 이뤘다. 아헨공대에는 전기차 E·go 모바일을 하루 6대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들어서 있다. 아헨공대 제공
‘고등교육기관들이 마치 투자은행이나 축구팀처럼 변신하고 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한 칼럼에서 런던대가 4억8000만파운드(약 7200억원)를 투자해 동런던에 조성 중인 새 캠퍼스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런던대의 야심찬 계획은 공학과 수학 분야를 집중 육성하기 위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 글로벌 대학들의 유례없는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 아헨공대는 캠퍼스 안에 전기차 공장을 두고 있을 정도다. 지난달 중국 선전을 탐방한 차석원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세계 대학 현장을 다녀보면 별천지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대학들의 ‘투자’ 경쟁

세계 주요 대학의 경쟁은 ‘별’들의 전쟁이다. 영국의 유명 축구 경기에 빗대 ‘대학 프리미어리그’로도 불린다. 인공지능(AI), 로보틱스, 스마트팩토리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선(戰線)이 기업을 넘어 대학에까지 펼쳐졌다.

미국 대학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버드대는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들여 알스톤캠퍼스에 공학 및 응용과학 분야 연구·교육을 위한 초대형 복합동을 건설하고 있다. 전통의 ‘라이벌’인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따라잡으려는 시도다. 스탠퍼드대는 2016년 2억5200만달러(약 3000억원)를 투입해 의학에 화학·생물학·엔지니어링 등을 결합한 새로운 융합연구를 위해 ‘ChEM-H’연구소를 세웠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는 AI를 접목한 지능형 도서관 신축에 1억3000만달러(약 1500억원)를 투자했다.

유럽 국가는 자국 대학이 미국 대학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을 막으려고 혈안이다. 영국 정부는 맨체스터대 ‘헨리로이스 선진재료연구소’에 1억2600만파운드(약 1900억원)의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포함한 아홉 가지 핵심 차세대 소재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는 취지다. 옥스퍼드대 내 생명 및 물리 분야 연구소인 ‘로잘린드 프랭클린연구소’엔 1억300만파운드를 투자했다. 이병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학부장은 “결국 자본력 싸움”이라며 “차세대 기술 주도권을 둘러싼 대학들 다툼에 정부, 기업까지 끼면서 흡사 전쟁과도 같은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캠퍼스에 전기차 공장, AI·로보틱스 투자… 글로벌 대학은 '별천지'
중국도 고등교육 육성에 집중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은 정부 주도로 최첨단 대학을 육성하고 있다. 화웨이, 텐센트, DJI 등 중국이 자랑하는 첨단기업이 몰려 있는 선전엔 매년 새로운 학과가 수십 개 생기고, 교수만 수천 명을 영입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선전시 캠퍼스타운에 있는 하얼빈공대 선전 분교는 지난해 280명 수준인 교수진을 2년 안에 500명, 5년 내 700명으로 늘릴 계획을 수립하고 세계를 대상으로 한 인재 모집에 나섰다. 한 대학의 분교가 몇 년 안에 서울대 공대(교수 320여 명) 전체만큼의 교수를 새로 뽑겠다는 것이다. 리후이윤 중국과학원 수석연구원(케임브리지대 박사)은 “매년 교수 자리만 몇백 개가 새로 생기는데도 우수 연구자를 빼가려는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인도는 한국의 KAIST 격인 전국 23개 인도공과대학(IIT)에 매년 1800만~2600만달러(약 200억~300억원)를 아무 조건 없이 지원하고 있다. ‘꼬리표’ 없는 예산으로, 대학은 이 지원금을 어디에 써도 상관없다.

IIT가 낳은 인재들은 세계 첨단기업의 영입 1순위로 꼽힌다. 2014년 기준 실리콘밸리 내 창업자의 15%, 미항공우주국(NASA) 직원의 32%가 IIT 출신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차 교수는 “우수한 인재가 모인 대학에 기업이 몰리고 기업이 모여든 도시가 성장한다는 원리를 세계 각국은 알고 있다”며 “한국은 대학을 육성이 아니라 규제 대상으로만 보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 4.0%

한국 대졸 이상 학력자의 실업률(통계청, 2017년 기준). 고졸 실업률은 3.8%로, 현재 기준에 따라 실업률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처음으로 대졸 실업률 아래로 떨어졌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