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 출처='황해문화' 제공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 출처='황해문화' 제공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에는 첫 행부터 짐작 가는 익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3행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이 En선생의 상습 성추행을 고발하고, 이어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따위 시구가 En선생의 정체와 문단의 침묵을 폭로한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의 수십년 성추문 파문은 문단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문단 내 성폭력을 증언하는 ‘미투(나도 피해자)’가 잇따랐다. ‘괴물’을 실은 계간 《황해문화》의 주간 김명인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사진)에게 저간의 사정을 물었다. 김 교수는 이해관계에 얽혀 수준 이하 작품을 칭찬하는 ‘주례사 비평’을 비롯한 문단 내 폐습과 권력관계를 비판해온 문학평론가다.

고은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감안하자는 일각의 옹호론에 대해, 김 교수는 “그가 거목이란 사실이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며 각을 세웠다. 지난 9일 인하대 서호관 연구실로 찾아가 진행한 인터뷰는 ‘문단 해체’ 논의로까지 이어졌다.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고은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폭로된 성추행의 면죄부로 삼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고은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폭로된 성추행의 면죄부로 삼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 ‘괴물’ 게재를 결정하면서 논란이 될 것을 직감했겠다.

“당연히. En선생이라는 이름부터 그랬다.”

- 최영미 시인도 실릴지 반신반의했다고.

“《황해문화》 편집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게재를 결정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편집위원들의 뜻을 물으니 물은 내가 부끄럽게도 만장일치로 “와이 낫?”이었다’고 경위를 적었다.)

- En선생이 누군지 최영미 시인에게 직접 들었나.

“그렇지는 않다. 직관적으로 알았다. 누구나 알 수밖에 없다. (고은 시인의) 젊은 시절부터 워낙 소문이 자자했으니.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 우문일지 모르겠으나,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건가.

“뼈아픈 얘기다. 누군가는 나서 그만두라고 한 마디 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다. 결코 변명이 될 수 없음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문단의 젠더(gender) 감수성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방증한 것이다. 근래로 오면서는 고은 선생이 워낙 거목이 되었다. 안이했다. 저를 포함해 모든 공범자 혹은 방조자는 반성해야 한다.”

- 직접 목격했나.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했는지.

“최근 고은 선생을 만난 적은 없다. 20~30년 전 기억을 떠올려보면 흔히 ‘너 참 곱구나, 어디 이리 와봐라’ 같은 말을 한다든지. ‘아이고, 고와라’ 하면서 손을 주무른다든지. 어디에서든 젊은 여성이 자리하지 않으면 흥미 없어하는 분위기도 있었던 듯하다.”
서울도서관에 마련된 연작시 '만인보' 관련 자료 전시공간 '만인의 방'에 앉은 고은 시인. / 사진=연합뉴스
서울도서관에 마련된 연작시 '만인보' 관련 자료 전시공간 '만인의 방'에 앉은 고은 시인. / 사진=연합뉴스
김 교수는 페이스북에 당시를 이렇게 전했다. “그가 젊고 예쁜 여성들을 좋아하고 술자리에서 그들에게 이쁘다느니 어떻다느니 희롱하고 또 이리 와봐라 저리 가봐라 하면서 손을 잡고 더듬고 하는 일은 나처럼 이런저런 행사에 잘 끼지 않는 사람도 직접 본 적이 있을 정도로 흔한 일이다.” “그것은 전설이기도 하고 현실이기도 할 정도로 오랜 시간 파다한 문단의 일상 같은 일이었다.” “문단이건 다른 문화 예술판이건 젠더 감수성, 일상적 인권 감수성은 거의 제로라서 어딜 가든 크고 작은 En선생들이 그야말로 즐비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 고은 시인이 왜 그랬다고 보나.

“일종의 예술가의 일탈의 특권? 면죄부? 같은 느낌이랄까. 괴테, 피카소 같은 해외 예술인도 그런 경우가 없지 않았으니. 예술가연 하며 현실의 윤리의식을 초탈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에는 윤리적·도덕적 잣대로 예술을 재단할 순 없다는 문단의 나이브(naive)함도 섞였을 터이다. 실은 노추(老醜)다.”

- 결코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

“고은 선생의 행위를 떠올려보면 묘한 느낌이 있다. 막 음탕하다거나 더럽다기보다 응석받이마냥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다. 혹자는 그걸 지적하는 사람이 까칠하다 여길 만한…. 물론,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엄밀히 말해 성추행이다. 일탈 특권, 면죄부 따위의 내적 논리가 우선할 수는 없다.”

- 예술가에게 규범·질서를 들이미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일반론 아닌가.

“동의한다. 그러나 마지노선은 있어야 한다. 모든 작가적 행위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범죄까지 용인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건 명백한 범죄다. 한편으로 질타하며 한편으로 즐기는 우리사회의 이중적 성의식 반영 아닌가 싶다.”

- 고은 시인의 제대로 된 입장 표명이 안 나온 것 같은데.

“명백한 범죄행위임을 본인이 정확히 시인하고 제대로 사과하는 게 필요하다. 격려 차원이었다는 정도의 사과로는 미흡하다.”

-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문인인 만큼 대중의 실망이 크다.

“그럴 수밖에. 과거의 업적을 넘어 어떻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지향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전언을 들어보면 고은 선생은 최근까지도 그랬다고 한다. 그건 문제다. 바뀐 젠더 의식에 대한 감수성이 없었다는 거니까. ‘과거에 그런 적 있다, 당시엔 잘못인 줄 몰랐다’는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 현재적 의미가 중요하다는 거구나.

“그걸 생략하면 그동안 쌓아온 것은 사상누각이 된다. 민주화운동 경험을 특권화해 도덕적 헤게모니를 쥐고 현재의 잘못이나 불성실을 은폐하려는 ‘86세대’가 비판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문단이 해체될 때가 됐다"고 했다.
김 교수는 "문단이 해체될 때가 됐다"고 했다.
그에게 고은 시인은 ‘애증의 대상’이다. 다시 페이스북 글을 인용하면 김 교수는 “여전히 그 En선생을 좋아하고 따르는 쪽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피안감성〉에서 〈새벽길〉을 거쳐 〈만인보〉에 이르는 그의 시적 여정 한 땀 한 땀을 늘 아끼고 좋아해 왔으며, 무엇보다 70~80년대의 헌신적 투쟁 과정 속에서 만난 그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잘 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무명 시절 고은 시인이 결혼식 주례를 맡아준 개인적 인연이 겹쳤다.

- 시인에 대한 애정이 엿보인다.

“정확히는 ‘애증’이지. 고은 선생에 대한 글을 썼다가 페이스북에 반성문을 올리기도 했다. 그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다만 그보다 더한 사례도 많았다. 등단이나 작품 게재를 미끼로 갖가지 성폭력을 저지른 자도 적지 않다.”

- 적어도 고은 시인은 그러진 않았다?

“분명히 하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은 선생은 잘못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고은 선생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의 사자후, 거침없이 직진하는 투사의 이미지가 강하다. 우리가 그에게 빚지고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반면 어떤 과잉 자의식, 노벨상에 대한 것이라든지 빵점인 젠더 의식 같은 부분은 싫었지. 그런 면에서의 애증이다.”

- 더한 이들이 문단에 많았다는 건데.

“고은 선생의 행위는 만인 환시중에 일어난 일이다. 더 악랄한 이들은 폐쇄적 공간으로 따로 불러내 대가를 바라고 음습한 짓을 저질렀다. 고은 선생의 죄질이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뜻이 아니다. 경중은 있을 수 없으되 감춰진 더 많은 성폭력이 문단에서 일어났다는 얘기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문단의 남성 중심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노인네가 젊은 여성의 손을 스스럼없이 잡을 수 있겠나. 그런 풍토 자체가 권력관계다. 다만 배경에 그런 권력관계가 깔려있는 것과, 권력관계 자체를 구체적 거래조건으로 삼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거다.”
김 교수는 "고은 시인의 작품에 대한 역사주의적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고은 시인의 작품에 대한 역사주의적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그는 지난해 발표한 〈죽은 시인의 사회­- 작가의 윤리와 도덕〉에서 문제의식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문단 밥을 먹고 살아온 모든 남성 작가들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전부 ‘잠재적 용의자’이거나 최소한 ‘방조자’였다고 해야 할 것”이라며 “하나의 기득권 제도이자 비즈니스의 세계가 되어 각종의 미시권력 관계가 가로세로 얽혀있는 현재의 한국 문단의 기본 구조 속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은 언제든지 재발하게 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의 결론은 이랬다. “이 ‘문단’이라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제 해체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 작가와 작품의 관계에 대한 고전적 질문을 해야겠다. 시인의 행적과 문학적 성취는 별개로 봐야 하는가?

“발표된 작품은 작가 소유라기보다는 공적인 것이다. ‘저런 성범죄자의 작품’ 식의 매도나 ‘작품은 좋으니 별개다’ 식의 접근 같은, 양극단을 넘어선 역사주의적 평가가 있어야 한다.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고은 시의 남근주의적 울림이 어디서 온 것이냐. 초기에는 버림받은 자의 감성, 퇴폐적 초월성 같은 것이 보인다. 독재 정권과 싸우는 투쟁기를 거치면서 과도한 남성성이 더해진다. 독재 정권의 강력한 가부장주의와 민족주의에 저항하는 또 다른 가부장주의와 민족주의의 표출로 볼 수 있다. ‘강 대 강’의 오랜 충돌 속에 남성적인 동질 의식을 형성했고, 그게 여성을 수없이 대상화하는 고은 시의 표현들로 드러난 것 아니겠나.”

- 예전 문학작품 속엔 그런 요소가 상당히 많다.

“80년대만 해도 소설의 거의 모든 여성 등장인물에 대한 표현이 성적 대상화 범주에 들어간다. 예컨대 주인공이 다방에 앉아있는데 여성 ‘레지’의 육체를 묘사한다든지. 플롯(구성)상 개연성도 없는데 말이지.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만 보는 이분법적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할까. 평론가로서 더 문제로 보는 건 ‘무(無)여성의 세계’다. 양성이 사는 게 아니라 여성 없이 존립하는 세계처럼 보이는 작품. 예컨대 김훈 선생 작품이 그렇다. 〈남한산성〉 같은 남성의 서사가 대표적이다. 작품에 대한 평가나 호오와 별개로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다.”

- 작품들을 다 갈아엎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검열해서 다 고치자고 할 수도 없다. 그건 또 다른 파시즘이 될 수 있다. 단 작가들이 지금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는 중요하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자기고백이 있어야 한다.”

- 동의하면서, ‘문단 해체’ 주장은 어떤 맥락인가.

“글쓰기의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소설·시·평론 등의 글쓰기를 특권화해 문인이 어떤 보호나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굉장히 낡은 것이다. 좀 더 발본적인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 그러나 문단의 힘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힘은 문학 출판자본에서 나온다. 소위 좋은 작가와 명작을 발굴하는 메커니즘의 작동 장(場)으로서 문단이 유효한 건데, 지금은 폐쇄적으로 변했다. 그 장에서 배제된 작가들, 지면을 못 얻어 개점휴업인 신춘문예 등단자가 너무 많다. 몇몇 출판자본의 포섭망에서 빠지면 등단 안 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느냐.”

- ‘낡은 카르텔’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연재하며 댓글 피드백을 동력으로 글을 썼다는 공장노동자 출신 김동식 작가의 최근 소설집 《회색인간》이 주목 받는다. 과연 문단이 김동식 작가를 품을 수 있을까?

“간신히 붙들고 있는 어떤 자격증인 셈이다. 촘촘한 서열과 특권의 권력관계로 유지되는 문단이란 환상 위에 성범죄가 독버섯처럼 자라난 거다. 글 쓰는 사람에게 위계가 있을 수 있나? 등단 50년 된 이나 막 첫 작품을 쓴 이나 글은 평등하게 대우 받아야 한다. 어린애 취급하고, 먼저 와서 인사해야 하는 굉장히 봉건적인 문화가 아직 남아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다.”

- 계급장 떼고 글로 승부해야 한다는….

“문단이란 뭔가. 본질적으로 예술가 모임, 동호인 집단 아닌가. 문단이 존재한다 해도 일종의 작가 동업조합이 돼야 한다. 자유로운 주체들의 자발적 결사체라면 존속해도 무방할 것이다. 조직이 아니라, 미적 근대성을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지가 문단에게 중요하다.”

- 전체 문단을 매도하지 말라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이는 ‘이너서클’에 속해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사태를 맞아 꼬리도 못 자르겠다고 버티면 결국 다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그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대안으로 문단 해체를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어떤 위계도 차별도 발 들여놓을 수 없는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문인 작가들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상상할 때가 되었다.” 한때 국문학도였던 기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인천=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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