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대학원생 A씨는 최근 지도교수 B씨에게 “안 좋은 학부 출신이라 그런지 사람이 모자란 것 같다”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들었다. 욕설과 폭언은 기본이고 사적인 심부름까지 시키는 등 B씨의 ‘갑질’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A씨는 지난달 말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고발로 사회 전반에 성폭력 폭로 캠페인인 ‘미투(#MeToo)’ 바람이 불자 용기를 내볼까도 고민했지만 “자신의 앞날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접었다. 그는 “지난해 6월 학내에서 벌어진 ‘텀블러 폭탄 테러’ 사건 직후 B교수가 잠깐 반성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지만 며칠 만에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걸 보면서 암담했다”고 털어놨다.

◆‘텀블러 폭탄’에도 대학원생 인권은 바닥

대학원생 권리장전도 나왔지만 교수 '갑질' 여전
대학원생 인권 문제가 ‘미투 운동’을 계기로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3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는 한 사립대 석사과정생 C씨의 성희롱 폭로 게시물이 올라왔다. C씨는 “지난해 12월 초 성희롱에 대한 사과와 지도교수 변경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텀블러 폭탄사건 후 대학들은 부랴부랴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선포했지만 공허한 선언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김용학 총장 주도로 권리장전을 제정한 연세대조차 “(권리장전에) 강제력이 없다 보니 시행 여부를 점검하기 힘든 건 사실”이라고 인정할 정도다.

다른 대학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대와 KAIST는 앞서 2015년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마련했지만 설문조사 결과 교수의 갑질에 시달렸다는 응답 비율이 전보다 늘었다. 대학이 사회적 관심에 놀라 일회성 조치만 시행했을 뿐 사실상 대학원생 인권에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한 대학의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 D씨는 “40대 시간강사에게도 청소를 시키는 게 갑질 교수”라며 “권리장전처럼 강제성이 없는 선언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갑을 구조부터 바뀌어야”

논문 완성도나 질과 관계없이 지도교수가 악감정을 지니면 학위논문이 통과되기 어려운 구조가 ‘대학원 갑질’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한 자연계열 대학원생은 “논문심사에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어 교수의 주관적 평가가 가장 중요하다”며 “진출하려는 분야에 지도교수 영향력이 미치는 경우가 많아 교수에게 밉보이면 취업까지 힘들어지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교육부가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전국 대학교수 성범죄 성희롱 징계 현황’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6년 6월까지 3년간 38개 대학에서 47명이 성범죄로 징계받았다. 하지만 43%에 달하는 20명이 경징계를 받아 다시 교단에 복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원생들은 지도교수가 철저한 ‘갑’인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노조 결성에 나섰다. 이달 설립을 추진 중인 대학원생노조 관계자는 “미국은 대학원생 노조가 60여 개 대학, 10만 명에 달한다”며 “현재까지 12개 대학 소속 대학원생이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고 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