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명의로 차명계좌를 개설해 세금을 포탈한 혐의 등으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임직원 세 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이 회장과 차명계좌를 관리한 삼성그룹의 사장급 임원 A씨, 삼성물산 임원 B씨와 현장소장 C씨 등 총 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8일 발표했다.

이 회장과 임원 A씨는 그룹 임원 72명의 명의로 260개 차명계좌(약 4000억원 규모)를 개설해 자금을 관리하며 2007~2010년 귀속분 양도소득세와 종합소득세 등 총 82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삼성은 2011년 이 계좌를 국세청에 신고해 이미 1300억원의 세금을 냈다. 이후 2014년 금융실명제법의 벌칙 조항이 신설되면서 계좌도 실명 전환했다. 당시는 불법 차명거래에 대해 형사처벌할 수 있는 개정 금융실명제법 시행 전이었다. 따라서 이번 수사로 삼성이 추가로 낼 세금은 없다.

하지만 경찰은 삼성이 뒤늦게 차명재산을 신고했더라도 이 회장 등이 조세를 포탈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조세범처벌법상 공소시효와 증여세 부과제척 기간 등을 적용해 범죄 혐의가 인정되는 82억원을 문제 삼았다.

경찰은 이 차명재산이 이 회장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혹은 증명하지 못했다. 공시시효가 지나 계좌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돼 자금 출처 수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좌가 개설된 삼성증권이 2008년 특검 이후 1999년 이전 전산 자료를 삭제해 남아 있는 자료도 없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