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둔 미군을 대상으로 한 기지촌에서 성매매에 종사한 여성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성매매를 방조·조장한 국가의 책임을 폭넓게 인정한 판결이다.

서울고등법원 민사22부(부장판사 이범균)는 8일 이모씨 등 117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씨 등은 2014년 6월 “성매매가 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국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불법행위 단속 예외지역으로 지정해 성매매를 단속하지 않았다”며 신체적·정신적 피해에 대해 1인당 1000만원씩의 위자료 지급을 청구했다.

지난해 1월 열린 1심에서는 국가가 기지촌 내 성병 환자를 불법으로 격리 수용한 책임만 인정했다. 이에 따라 원고 중 1977년 ‘성병 감염인 격리 수용에 관한 법’이 시행되기 전 피해를 입은 57명에게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항소심은 국가의 책임 범위를 보다 넓게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성매매를 매개 및 방조하고 성매매 정당화를 조장한 책임이 인정된다”며 “모든 원고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성병에 걸린 여성들을 격리 수용한 데 대해서도 “1심에서 인정한 규정 시행 이후에도 법령 규정 없이 강제 수용한 행위 등은 모두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원고 측 대리인을 맡은 하주희 변호사는 선고 후 “국가가 사실상 포주 노릇을 했다는 판결”이라며 “기지촌 성매매 여성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적 연장선에 있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원고들이 자신의 의사결정에 따라 기지촌에서 성매매에 종사한 데 대해 일반적인 국가 책임을 인정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