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원격의료 활성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2015년 전면 시행한 데 이어 오는 4월부터는 의료보험까지 지원해주기로 했다. 진료비 부담이 기존의 30%(보험 수가 기준) 수준으로 낮아져 원격의료를 이용하는 환자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모바일 헬스케어산업에서 한·일 간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환자는 편해지고 의료비는 줄고… 일본, 원격의료로 고령화 대응
“폭증하는 의료비 잡아라”

일본 정부가 원격진료에 건강보험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은 역설적으로 돈을 아끼기 위해서다. 일본 국민이 해마다 지출하는 의료비는 2000년 30조1418억엔(약 300조원)에서 2015년 42조3644억엔(약 424조원)까지 늘었다. 2015년 의료비 지출이 115조원이던 한국보다 3배 이상 크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 출생)가 75세 이상이 되는 2025년 이후부터는 지금까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의료비가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원격진료가 보편화되면 물리적으로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산간벽지, 도서지역뿐 아니라 도심에서도 직장 및 육아 등으로 낮시간에 병원에 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손쉽게 건강관리를 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시간과 비용까지 절약할 수 있다. 의사 입장에서도 여러 환자를 진료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일본에서는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뿐만 아니라 발기부전, 조루, 탈모 등의 질병도 원격으로 진료하는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중국 등 해외에서도 활발

원격진료를 이용한 디지털 헬스케어에 나선 나라는 일본만이 아니다. 미국, 중국, 유럽 등에서도 디지털 헬스케어가 활성화되고 있다. 진료, 처방, 의약품 구매 등 병원에서 이뤄지는 의료행위들이 온라인상에서 이뤄진다.

미국, 영국 등에선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의약품과 처방전이 필요한 의약품 모두 온라인 판매가 허용돼 있다. 화상을 통한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 텔라닥은 시가총액 2조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할 정도로 미국에서는 원격의료 수요가 많다. 아마존도 지난해 미국 12개 주에서 약국 면허를 취득하고 의약품 온라인 판매를 준비하는 등 온라인에 기반한 의료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2014년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한 중국에서도 환자는 병원에 직접 가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의사에게서 진료, 검사, 건강관리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인터넷 병원과 연계된 약국에서는 온라인으로 약을 배송받을 수도 있다. 원격 병원 숫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19년째 시범사업 중인 한국

한국은 2000년 강원도 보건소에서 첫 의료인·환자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시행한 이후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18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의료인·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원격진료 허용이 의료의 질을 하락시키고 소수 대형병원과 대기업에 집중될 것이라는 이유로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반대하고 있어서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헬스케어에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해 격오지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만성질환자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자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의료영리화로 이어질 수 있고 오진 가능성, 의료정보 유출 등 부작용 우려가 크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고령화 등으로 빠르게 늘어날 의료비를 감당하려면 원격의료 허용을 통한 만성질환 관리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동경 삼성서울병원 정보전략실장은 “여러 차례 시범사업을 거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가 환자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데 대부분의 의사는 동의할 것”이라며 “디지털 헬스케어가 의료영리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건강을 증진하기 위함이라는 사회적인 공감대를 조성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