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가압류 전세금은 새 집주인이 승계"… 매수인 보호장치 필요
지난 몇 년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로 주택의 전세금이나 임대차보증금(이하 ‘보증금’)이 매매가의 80~90%에 육박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했다. 이에 따라 가계 자산에서 보증금반환채권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져 왔다. 자금 융통이 필요한 임차인이 은행 등에 보증금반환채권을 담보로 제공하고 돈을 빌리는 경우도 늘었으며, 임차인의 채권자가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채권을 가압류하거나 압류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보증금반환채무를 부담하는 집주인 입장에서 보면 자신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임차인이 아닌, 임차인의 채권자와의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집주인이 임대차계약 만료 전에 주택을 제3자에게 양도한 경우에는 그 분쟁이 새 집주인과 임차인의 채권자 간 분쟁으로 전환된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4항에 따라 임차주택의 양수인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는 종전 집주인과 임차인, 임차인의 채권자 간 관계를 미리 알 수 없었던 새 집주인에게 상당한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판결이 ‘대법원 2013년 1월17일 선고 2011다49523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보증금 가압류 사실 몰랐던 새 집주인

위 사건에서 임차인 A는 2002년께 임대인 B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 3000만원을 지급한 다음, B 소유 주택에 전입신고한 뒤 거주해왔다. 그 후 위 주택의 소유권은 C, D를 거쳐 Y에게 이전됐다.

한편 임차인 A의 채권자 X는 위 주택의 소유권이 아직 Y에게 이전되기 전에 위 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해 가압류 결정을 받았고, 그 결정문은 당시 위 주택의 소유자였던 D에게 송달됐다. 이런 사정을 알지 못했던 새 소유자 Y는 위 임대차계약 종료에 따라 임차인 A에게 보증금 3000만원을 반환했다.

그 후 A로부터 채무를 변제받지 못한 A의 채권자 X는 위 가압류 및 그에 근거한 본압류 및 추심명령에 근거해 Y를 상대로 보증금 3000만원을 자신에게 지급해 줄 것을 청구했다. Y가 위 가압류 결정에 반해 A에게 보증금을 지급한 것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심 판결은 아무리 X가 2005년에 이미 A의 보증금반환채권을 가압류해 놓았더라도 그 가압류의 효력은 가압류 결정을 받은 임차인 A와 그의 채권자 X, 그리고 위 결정문을 송달받은 종전의 집주인 D에게만 미치는 것이므로, 새로운 집주인 Y에게는 그 가압류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임차인의 채권자 X는 새로운 집주인에게까지 그 가압류의 효력이 미친다고 주장하면서 대법원에 상고했다.

▶“양수인은 종전 임대인의 지위 승계”

[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가압류 전세금은 새 집주인이 승계"… 매수인 보호장치 필요
대법원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위 법의 적용을 받는 주택을 양수한 자는 양도인이 가지고 있던 종전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양수인은 주택의 소유권과 결합해 임대인의 임대차계약상 권리·의무 일체, 특히 보증금반환채무를 그대로 승계할 뿐만 아니라 종래 임대인이 받았던 채권가압류 결정에 따른 제3채무자로서의 지위도 함께 이전받는다는 것이다. 임대주택이 양도됐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채권가압류 결정의 효력이 새로운 집주인에게 미치지 않는다면, 성실하게 가압류해놓은 임차인의 채권자로서는 장래 주택의 매각대금으로부터 우선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하는 중대한 불이익을 입게 된다고 봤다.

위와 같은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Y는 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한 가압류 결정문을 송달받은 적이 전혀 없더라도 여전히 위 가압류 결정의 효력에 따라 임차인에게 위 보증금 3000만원을 지급해서는 안 되며, 설령 이미 이를 지급했더라도 이로써 X에게 대항할 수 없다. 따라서 Y는 X에게 다시 보증금 3000만원을 지급해야 하며, 자신이 임차인에게 이미 지급한 3000만원은 임차인 A를 상대로 반환을 청구해야 한다. 임차인이나 종전의 집주인, 공인중개사 등 누구로부터도 임차인의 채권자 X의 존재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없는 새로운 집주인 Y의 입장에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결론이다. Y는 부동산등기부를 통해서도, 주민등록등본을 통해서도, 부동산 현황 확인을 통해서도 보증금반환채권자가 임차인 A로부터 임차인의 채권자 X로 변경됐다거나 변경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택 임차인 보호라는 입법 목적을 위해 마련된 주택임대차보호법 조문을 임차인의 채권자 보호를 위한 법 해석의 근거로까지 삼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채권자 보호가 부동산등기부 등을 신뢰하고 주택을 매수한 소유자(물권자)의 희생 아래 이뤄진다는 점에 비춰 보면 더욱 그렇다.

위 대법원 판결 선고 당시 5인의 대법관 역시 위와 같은 결론에 반대하면서 소수의견을 냈다. 이들은 △이런 결론을 택할 경우 임대주택을 양수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의 책임과 부담 아래 보증금반환채권에 관한 압류나 가압류의 존부와 내용을 조사해 파악할 수밖에 없다는 점 △임대주택이 여러 차례에 걸쳐 양도되고, 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한 압류나 가압류도 여러 차례 있었던 경우에는 매수인이 현재 임차인이 최초로 거주할 당시부터의 임대주택 소유자를 모두 추적해 그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는 점 △종전 소유자 입장에서는 매매계약 체결 등이 무산될 것을 염려해 압류나 가압류의 존부와 내용에 관해 침묵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따라서 양수인에게 위와 같은 조사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상당한 거래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 △부동산 중개인과의 사이에서 압류나 가압류의 조사의무나 책임 소재·범위 등을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는 점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보증금 가압류’ 미리 알 수 있도록 해야

이 같은 판결의 태도가 주택임대차보호법 적용을 받는 주택 양수인의 피해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부동산 거래 시 공인중개사들에게 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한 가압류·압류 등의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를 매도인과 기타 전 소유자들에게 확인해 매수인에게 전달할 의무를 부과해야 할 것이다.

물론 주택 양수인이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이미 지급한 결과 가압류채권자 등에게 이중으로 보증금을 지급하게 됐더라도 그는 임차인에게 기지급된 보증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사후적인 구제책에 불과하며, 임차인이 소재 불명이거나 무자력(無資力·채무초과)인 경우에는 결국 위 금액을 반환받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공인중개사를 통한 확인 절차 마련 등 적극적인 예방 조치를 통해 당사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 제3채무자, 가압류 채무자에게 변제해선 안돼

채무자에 대해 금전채권을 갖고 있는 자는 채무자가 제3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채권을 가압류할 수 있다. 가령 임차인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은 임차인이 임대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보증금반환채권을 가압류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의 채권을 확보하기 위해 채무자의 채권을 압류한 사람을 가압류채권자, 자신의 채권을 압류당한 사람을 가압류채무자, 가압류채무자에 대해 채무를 지고 있었던 사람을 제3채무자라고 한다.

이와 같이 채권을 가압류한 경우 가압류 결정을 내린 법원은 가압류채무자와 제3채무자에게 그 결정문을 송달하며, 이를 송달받은 가압류채무자와 제3채무자에게는 그 가압류된 채권을 처분해서는 안 되는 의무가 부과된다. 즉, 가압류채무자는 자신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거나 증여하거나 담보로 제공하거나 면제해서는 안 된다. 제3채무자 역시 가압류된 채권을 소멸시키는 행위, 특히 가압류채무자에게 이를 변제하는 행위 등을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가압류 결정에 위반되는 처분행위를 한 경우에는 가압류채권자에 대해 그 처분행위가 유효함을 주장할 수 없으며, 가압류채무자는 가압류채권자와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제3채무자에 대해 채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취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