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막 오른 변호사 'TV 광고 시대'… "소비자에 정보 제공 긍정적" vs "로펌 빈익빈 부익부만 심화"
“인생의 마지막 설계는 상속설계입니다.” 심각한 표정의 중년 남성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지난 23일부터 한 케이블 방송에서 전파를 타기 시작한 법무법인 헤리티지의 광고 카피다. 국내 법무법인 중 처음으로 시도하는 TV 광고다.

변호사 2만5000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생존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자 일부 법무법인이 새로운 홍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법무법인의 광고 확대 전략은 법률 소비자에게 정보 제공의 폭을 넓혀준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과당 경쟁, 불필요한 소송 유발 등 부작용도 예상돼 법조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7년 허용 후 첫 사례

법무법인의 첫 TV 광고가 나오는 데는 진통이 있었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법무법인이 광고를 게재하려면 지역에 소속된 변호사회 인가를 받아야 한다. 헤리티지의 광고 안건은 지난해 8월 서울지방변호사회를 통과했지만 실제 방송을 타기까지 5개월 이상 걸렸다. ‘광고책임변호사’를 반드시 표기하고 ‘(특정 분야) 전문’ 등의 표현은 삭제할 것 등 서울변호사회가 까다로운 보완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수차례 수정과 재심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광고가 완성됐다.

재선 국회의원 출신인 최재천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9기)가 이끄는 헤리티지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상속설계를 전문 분야로 내세우고 지난해 출범한 신생 중형 로펌이다. 변호사뿐 아니라 회계사, 재무·부동산 관리 전문가 등이 한곳에 모여 ‘원스톱 프리미엄 상속설계 서비스’ 제공을 모토로 내걸고 있다.

최 대표변호사는 “변호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서비스 소비자는 어떤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법무법인 스스로 전관 경력이나 학연 등을 내세우는 과거 방식을 탈피하고 전문성으로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법무법인의 TV 광고는 변호사법 개정으로 2007년부터 가능했지만 10년 이상 사례가 없었다. 한 변호사는 “굳이 TV 광고까지 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영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관심을 두는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까다로운 규제도 발목을 잡았다. ‘전문분야’ 등록을 한 변호사가 아닌 경우 ‘최고’ ‘유일한’ 등의 표현을 못 쓴다. 버스 내부 광고는 가능하지만 외부 광고판은 금지하는 것도 다양한 규제 중 대표적인 예다.

반면 해외 주요국은 법무법인의 TV 광고가 흔하고 규제도 약한 편이다. 가령 미국은 ‘한번 이혼소송을 맡기면 다음 이혼소송은 반값에 해주겠다’는 식의 자유로운 표현이 허용된다. 교통사고, 이혼, 부동산 등 실생활과 밀접한 분야가 일반적이다. 일본도 다양한 형태의 변호사 광고가 TV 전파를 타고 있다.

◆정보 제공 확대냐 상업화냐 갑론을박

변호사들이 광고전에 나선 것을 두고 업계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해마다 1600명가량 쏟아져 나오면서 법조시장은 정체기가 뚜렷하다. 변호사-세무사, 변호사-변리사 등 유사직역 간 갈등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자연히 학연, 지연 등 비공식적인 경로나 브로커, 사무장 등을 통한 관례적인 사건 수임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TV 등 광고 확대가 새로운 기회로 여겨지는 이유다.

대형 로펌이나 전관 등에 비해 별다른 홍보나 영업 수단이 없는 중소형 로펌이나 젊은 변호사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광고 활성화로 변호사 개개인의 전문 분야 구분도 뚜렷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생각만큼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30여 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서초동의 한 로펌 대표변호사는 “한때 TV 광고를 고려했지만 내부 회의 결과 시기상조란 판단이 들었다”며 “아직은 변호사 개개인의 맨파워 강화에 집중하는 것이 로펌 전체로 보면 이득”이라고 분석했다. 대형 로펌의 경우 워낙 다루는 분야가 다양한 데다 대기업 위주로 주고객을 삼아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분위기다.

이미 과당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데 업계의 변호사 간 부익부 빈익빈만 심화시켜 이들이 적자생존 경쟁에 더욱 내몰릴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정보 제공이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시선끌기로 변질될 뿐 아니라 업계의 상업화만 부채질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