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고육지책 '정책숙려제'…"누가, 어떻게"가 빠졌다
국민참여 정책숙려제. 교육정책 혼선 반복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교육부가 올해 업무보고 자리에서 새로 꺼내든 ‘카드’다. 김상곤 부총리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 사회적 파급력이 크고 첨예한 갈등이 예상되는 교육정책을 정할 때 국민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밝힌 정책숙려제의 얼개는 대략 이렇다. ①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교육부 ‘온교육’ 사이트 등을 통해 의견을 접수한 뒤 ②이를 반영해 30일에서 6개월 이상의 숙려기간을 갖고 ③정책 결정 배경과 사유 등을 상세히 밝히는 과정을 거친다.

고육지책을 내놓았지만 두루뭉술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논란이 된 정책을 ‘누가, 어떻게’ 최종 결정할지가 빠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 전환, 올 초 유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정책이 연거푸 좌초된 만큼 어지간한 대책으로는 꼬인 매듭을 풀기 어렵게 됐다. ‘참여’와 ‘숙려’ 키워드를 구체적으로 어떤 의사결정모델에 녹여낼지가 관건이다.

그동안 의견수렴 절차가 없었던 건 아니다. 작년 수능 절대평가 전환 여부 결정을 앞두고는 김 부총리가 직접 수험생 학부모들과 만나 소통(‘찾아가는 학부모 경청투어’)하기도 했다. 뚜렷한 결함이 있었다. 표본이 너무 적고 걸러진 것이었다. 김 부총리가 매번 만난 학부모는 스무명이 채 안 됐다. 참석 학부모는 교육청이 추천해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행사 자체도 비공개로 진행됐다.

‘현장 의견’이란 게 생생한 날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한 교육계 인사는 “만약 정책숙려제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전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김상곤 부총리. / 사진=한경 DB
김상곤 부총리. / 사진=한경 DB
대입제도 개편 1년 유예 뒤 교육부가 의견수렴 절차로 운영 중인 대입정책포럼도 이런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다. 방향은 정해져 있고 발제자도 거기에 맞춰 섭외한다는 의구심이다. 수능 절대평가 반대, 대입 정시모집 확대를 요구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스타일의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때문에 김 부총리 역시 공청회나 전문가 자문 등을 뛰어넘는 수준을 구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 방식으로 국민 의견수렴에 실패했다는 판단에서 정책숙려제를 제시한 만큼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두 가지 핵심 키워드 가운데 ‘참여’ 측면에서는 더 많은 표본, 보다 생생한 날것의 의견을 받아 안는 시도가 예상된다. 각종 현안에 대한 국민 의견이 분출되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를 콕 집어 거론한 이유다.

남는 것은 ‘숙려’ 키워드다. ‘참여’ 키워드보다 훨씬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유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논란에서 보듯 교육정책 이해당사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이 한층 강해졌다. 의견수렴을 거친다고 해도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예컨대 원전 공론화위원회 모델도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 갈등 사안에 대해 시민참여단이 시간을 두고 숙의, 수차례 공론조사로 의견을 모아나가고 도출된 결과에 승복하는 과정은 문재인 정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찬반 의견만 물었던 원전 공론화위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겠지만 벤치마킹 대상이다. 사안에 따라 다른 모델을 적용할 수도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놓고 매뉴얼을 다듬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사회적 갈등을 빚는 교육정책은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교육부가 곧 내놓을 정책숙려제 세부 매뉴얼에서 가장 눈여겨볼 점은 ‘확실한 의사결정모델을 갖췄는지’가 돼야 한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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