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다. 쫄지 않는다. 즐긴다. 한마디로 멋있다. 지난 24일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서 4강 신화를 쓴 ‘교수님’ 정현(22·세계 58위)의 반전 매력이다. 비트코인과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찬반으로 사분오열된 ‘피로 사회’ 한국을 난타하는 시원한 울림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유쾌한 정현앓이’로 불붙어 있다.

유쾌 상쾌 통쾌… 불붙은 ‘정현 신드롬’

정현은 시대를 뒤흔드는 현상이 됐다. 단순한 스타가 아니라 ‘스포테이너(sports+entertainer)형 아이돌’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24일 종합편성채널(종편) JTBC에서 방송된 정현과 테니스 샌드그런(97위·미국)의 경기 시청률은 5.020%(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동시간대 모든 방송을 압도한 시청률이다. 해외에서도 칭찬 일색이다. 호주 매체인 뉴스닷컴은 “호주오픈 최고의 인기 스타는 정현”이라고 썼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2위·스위스)와의 준결승전이 열리는 26일은 그야말로 ‘J(정현)데이’로 출렁댈 조짐이다. ‘넘사벽’을 뚫어낸 그의 끝장 도전을 보기 위해 퇴근시간을 당기고 저녁 약속을 미루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는 힘이 정치나 올림픽보다 강하다” “그가 있어 행복하다”는 찬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차고 넘친다.

“즐겨야 청춘”… 쿨한 ‘힙스타’에 열광

‘미스터 충(chung)’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자체로 드라마다. 잘 짜인 시나리오처럼 적재적시(適材適時)에 반전 스토리를 드러낸다. 생방송 콘서트에서 느끼는 날것의 짜릿함과 비슷하다. 개성적인 자기표현과 솔직한 소통, 자기 가치가 뚜렷한 ‘힙(hip)세대’의 특징이 극적 장치가 되며 감동을 증폭시킨다. 승리 인터뷰부터가 반전이다. ‘보고 있나 캡틴(22일)’ ‘충 온 파이어(24일)’는 단문 시(詩) ‘하이쿠’처럼 강렬하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페더러와는 대결만으로도 영광”이라면서도 “가는 데까지 가보겠다(24일 공식 인터뷰)”는 말에서는 겸손과 패기가 동시에 읽힌다.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식의 고전적 인터뷰에서는 찾기 힘든 발랄함이다.

무엇보다 ‘쿨’하다. 그는 8강전 승리 후 인터뷰에서 ‘두 팔을 번쩍 든 세리머니는 미리 준비한 것이냐?’는 장내 아나운서의 질문에 “그냥 딱히 할 게 없었다”고 말해 관중의 박수를 받았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 노래방, SNS 등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DN세대)’들이 팍팍한 삶에서 개성 강한 자기표현으로 의미를 찾는 방식과 닮았다. DN세대는 자기 감정과 생각을 연출하는 데 능하다.

그는 수많은 관중, 시청자 앞에서 ‘쫄지’ 않았다. 네이티브처럼 유창하지는 않지만 자신있는 영어로 관중을 들썩이게 했다. 힙세대는 스마트폰으로 무엇이든지 익히고 공유한다. 진지함보다는 가벼움에서 위트를 찾는 유머 코드도 마찬가지다.

신세대 스포츠 영웅은 시대마다 있어왔다. 수영과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박태환(29)과 김연아(2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아시아인 최다골 신화를 작성 중인 손흥민(26),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제5의 메이저’인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을 제패한 김시우(23) 등이 대표적이다. 정현은 한발 더 나아가 과정을 즐길 줄 아는 ‘펀(fun)’과 ‘흥’을 접목해냈다.

‘당당한 소통’이 탄생시킨 방탄소년단

K팝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성공 비결도 정현의 성공 스토리와 비슷하다. 소통의 힘 덕이다. 방탄소년단은 노래에서 흔한 사랑 얘기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10~20대의 치열한 고민과 불안, 생각 등을 주제로 노래한다. 방탄소년단은 “아무것도 없던 열다섯의 나, 세상은 참 컸어 너무 작은 나”(BEGIN) 등의 노랫말로 10대의 불안을 어루만졌다.

‘신비주의’는 없다.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SNS를 통해 진솔하게 소통한다. 방탄소년단 멤버 7명은 공식 트위터 계정(@BTS_twt)을 함께 사용하며 자잘한 일상을 나눈다. 24일엔 한 멤버가 주택가 벤치에 혼자 앉아 뻥튀기를 먹는 사진을 올렸다. 한 멤버는 의자에 앉다 엉덩방아를 찧은 사연을 공유했다. ‘민덜렁’ ‘민덩방아’ 등의 별명을 지어주면서 팬들은 열광했다.

■ 힙(hip) 세대

영어 ‘hip’은 ‘앞서 있는, 유행에 밝은, 통달한’이란 뜻이다. ‘힙하다’고 하면 자신만의 개성과 감각을 드러내며 남다른 것을 찾아나선 사람들의 특성을 지칭한다. 현재 10대 후반~20대 초반인 힙세대는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면서도 사람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추구한다. 주류 문화에 편승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며 말이나 행동도 생동감 있게 한다.

이관우/마지혜/김희경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