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영어시험의 대표 격인 텝스(TEPS)가 20년 만에 전면 개편된다. 최근 7년 사이에 응시자 수가 70%가량 급감하자 서울대 텝스위원회가 쇄신책을 내놓은 것이다. 토익(TOEIC) 토플(TOEFL) 등 수입 영어시험의 독주 속에 대부분 ‘국산’ 영어시험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텝스의 실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스펙’ 바람 불면서 응시자 급감

텝스위원회는 오는 5월12일 정기시험부터 새롭게 개정한 ‘뉴 텝스(NEW TEPS)’를 시행한다고 25일 밝혔다. 1999년 시험이 시작된 뒤 첫 전면 개정이다.

문제 분량을 200문항에서 135문항으로, 시험시간은 2시간20분에서 1시간45분으로 줄이는 것이 개편의 핵심이다. 토익과 같이 990점 만점이던 점수 체계도 600점으로 바뀐다. 출제를 총괄하는 권혁승 서울대 언어교육원장(영어영문학과 교수)은 “지문 하나에 문항이 두 개 달린 복합문제 등을 도입해 변별력을 유지하겠다”고 설명했다.
위기의 토종 영어시험 TEPS, 20년 만에 전면 개편
시행 첫해 4만 명에 못 미친 텝스 응시인원은 ‘대입에 도움이 된다’는 입소문을 타며 빠르게 증가해 2010년 50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입시제도 변화로 타격을 입은 데다 대학가에서 ‘스펙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주 응시자층인 20~30대에게서도 외면받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문제가 어려워 스펙 쌓기에 도움이 되지 못해서다. 2010년 꼭지를 찍은 응시인원은 7년 만인 2017년 14만 명으로 72% 급감했다.

반면 토익 주관사인 미국 ETS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다. 교육부에 따르면 2008~2013년 6년간 토익 응시인원은 1219만2319명, 응시료는 4841억9930만원에 달했다. 이후 ETS 측이 응시자 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학원업계는 매년 토익 응시자 수를 최소 200만 명으로 보고 있다. 토익 응시료의 10%, 토플 응시료의 100%를 로열티로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진 ETS의 수입은 토익에서만 매년 100억원에 달한다. 토익스피킹, 토플, GRE 등을 포함하면 연간 1000억원에 육박한다는 평가다.

◆시험 슬림화, 수출로 돌파구 모색

텝스는 정부의 교육정책 변화에 크게 휘둘렸다. 2000년대 초 학원가엔 ‘텝스 점수가 높으면 서울대 입시에서 가산점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퍼지며 상위권 중·고교생을 중심으로 텝스 응시가 유행을 탔다. 대학마다 텝스로 선발하는 영어특기자 전형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급성장에 한몫했다. 그러나 정부가 사교육 억제 등을 이유로 특수목적고 입시와 중·고교 생활기록부에서 영어인증시험 반영을 막자 응시자는 급감했다. 차별화를 위해 채택한 고난도 전략은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취업준비생들이 상대적으로 점수 따기가 수월한 토익으로 몰려가면서 격차는 더 벌어졌다.

텝스의 몸부림은 악전고투 중인 토종 시험업계의 어려움을 대변한다. 초·중·고교생을 겨냥해 한국교육공사(EBS)가 내놓은 토셀(TOSEL), 7가지 언어로 시험을 다변화해 차별화를 꾀한 한국외국어대의 플랙스(FLEX) 등도 응시자 수 확보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는 시험 개편과 동시에 해외 사업 강화를 돌파구로 삼을 방침이다. 일본(EIKEN), 중국(CET), 대만(GEPT) 등 아시아권 주요 영어인증 기관과 상호 점수환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송욱 텝스위원회 사업본부장(체육교육과 교수)은 “독자 영어시험이 없는 베트남으로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장현주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