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20개로 쪼개지는 경찰… "경계 애매한 실종 사건 누가 맡지?"
제주 서귀포시 주민 고모씨는 지난해 여름 집 근처 주민센터에 불법 주차된 신원미상의 차량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뜻밖에 “주차단속 권한은 자치경찰에 있으니 그리로 문의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에 고씨는 제주도 산하 자치경찰에 문의했다. 그러나 자치경찰 측은 “인력 부족으로 2017년 1월부로 불법 주정차 단속은 시청에서 맡기로 했다”고 말했다. 할 수 없이 또다시 서귀포시에 전화를 걸었다. 시 측은 “야간 불법 주차는 경찰 소관”이라며 “관련 부서로 전달하겠다”고 했다. 이후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2006년 제주자치경찰단 출범과 함께 경찰과 제주도는 주간에는 자치경찰이, 야간엔 경찰이 주정차 단속을 맡는다는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고씨는 “주민센터 바로 앞에 불법 주차한 것조차 서로 책임을 떠넘기니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최근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 3대 수사기관의 권한을 재정립하는 권력기관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20년 가까이 끌어온 ‘자치경찰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에서 일부 수사권을 이양받는 대가로 경찰도 민생치안 업무를 지방자치단체로 넘기는 게 개편안의 골자다. 과거 정부의 자치경찰제 논의에 깊숙이 관여한 한 교수는 “기관 간 힘싸움에 국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가 도매금으로 넘어간 셈”이라며 “교과서적으론 맞지만 현실과 괴리된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경찰팀 리포트] 20개로 쪼개지는 경찰… "경계 애매한 실종 사건 누가 맡지?"
극심한 ‘칸막이 문화’에 책임 떠넘기기 우려

지난해 전 국민을 경악하게 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은 경찰 조직의 칸막이 문제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씨 딸 친구인 김모양의 실종신고가 접수됐을 때 중랑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선 이씨 계부의 며느리 성폭행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김양이 이씨 집에 놀러갔다가 실종됐는데도 경찰은 ‘단순 가출’로 판단했다. 사건 발생 20시간 뒤에야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지만 김양은 이미 살해된 뒤였다. 근무 조만 달라도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경찰 조직 내 칸막이 문화가 어린 생명을 앗아간 셈이다.

자치경찰제가 시행되면 현재의 경찰 조직은 무려 20등분 된다. 17개 시·도에 각각 교통이나 가정·성폭력 등 민생치안을 맡는 자치경찰단이 신설되고 국가경찰도 △경비·정보 업무를 담당하는 일반경찰 △강력 범죄자를 쫓는 수사경찰 △국정원에서 이관되는 대공수사를 합친 안보수사처 등으로 나뉜다.

일선 경찰서에선 “비현실적”이란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연쇄살인, 보이스피싱 등 공간적 경계를 넘나드는 범죄의 공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우려다.

2004년 7월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경찰에 붙잡혔다. 10개월간 서울 전역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지만 수사는 경찰서마다 제각각 이뤄졌다. 경찰은 이 사건을 교훈 삼아 지방청 단위 광역수사대를 설치했다. 그럼에도 일선 서별 공조 문제는 여전히 해묵은 숙제로 꼽힌다. 한 일선 경찰서 수사과장(경정)은 “누가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하면 다리 하나를 놓고 관할을 따지는데 하물며 아예 소속이 다른 사람들끼리 협력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실종자 수사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 경찰개혁위원회가 마련한 ‘자치경찰제 권고안’에 따르면 납치 등 강력범죄가 의심되지 않는 실종자·미귀가자에 대한 수사를 자치경찰의 사무로 규정했다. 한 지구대 경찰관(경위)은 “실종자가 발생했을 때 납치된 것인지 가출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며 “결국 ‘책임 떠넘기기’만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청와대가 해결책으로 제안한 것은 MOU다. 구체적 수사 범위부터 사건 발생 시 협력 시스템까지 지방경찰청과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MOU를 맺으라는 얘기다. 경찰개혁위원인 양영철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형식적인 MOU로 조직 간 칸막이를 없애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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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토착세력과의 유착 해소가 관건

유력 정치인인 광역시장 및 도지사의 지휘를 받는 자치경찰이 과연 정치적 외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도 제기된다. 지방자치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토착 세력과의 유착이 자치경찰제 아래 더욱 기승을 부릴지 모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가 자치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줄 제도적 장치로 제안한 것은 지역주민, 시민사회 인사, 치안분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치경찰위원회다.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닌 9~15명의 민간위원으로 단체장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관건은 자치경찰위원회가 제대로 된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다. 청와대 측은 위원회 구성을 단체장 및 시·도의원에게 맡겼다. 현실적으로 지역 정치인의 도움 없이 위원회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서다.

그러나 비슷한 목적으로 권력기관 산하에 설립, 운영 중인 기존 민간 위원회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10년 각급 검찰청에 설치된 시민위원회는 사실상 검찰의 ‘거수기’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4년 사건 처리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신설한 민간자문심사위원회도 상정 건수가 3년간 6건에 불과했다. 최관호 경찰청 자치경찰추진단장(경무관)은 “자치경찰의 중립성 확보는 분과위에서 아직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시인했다.

소방은 오히려 국가직화하는데 …

자치경찰제가 넘어야 할 산은 이뿐만 아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일부 광역지자체는 벌써부터 난색을 보이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7년 전국 도의 재정자립도는 38.3%에 그쳤다. 기초지자체인 시(39.2%)와 군(18.8%)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편안엔 이렇다 할 재정 확보 방안이 없다. 경찰개혁위 권고안 역시 창립 초기 지원과 기존 경찰서, 지구대 건물 공동 사용 정도만을 제시했다. 김동규 제주자치경찰단 경찰정책관(자치총경)은 “국가경찰도 광역범죄 수사, 정보 수집 등을 위해 기존 경찰서 및 지구대 공간 상당수를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며 “충분한 예산, 인력 지원 없인 자치경찰제가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 안전과 직결된 사안을 놓고 무리한 실험에 나선다는 비판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지방직 공무원이던 소방 공무원을 전원 국가직화하기로 했다. 소방 서비스가 지자체 재정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최천근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소방과 치안 모두 국민 생명과 직결된 서비스인데 조직을 다르게 둘 이유가 있느냐”며 “특정 주의나 주장에 매몰되기보단 정책이 실제 지역주민의 생활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정환/장현주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