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왼쪽)와 활동가가 포천 ‘강아지 농장’에서 구조활동을 펼치고 있다. 케어 제공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왼쪽)와 활동가가 포천 ‘강아지 농장’에서 구조활동을 펼치고 있다. 케어 제공
경기 포천의 유기동물보호소 ‘애신동산’ 입구에는 ‘날 버리지 마세요’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추가 입소를 중단했는데도 병든 강아지를 몰래 버려두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17일 애신동산에서 만난 윤모 부원장(70)은 유기견 ‘바둑이’를 쓰다듬으며 “이곳이 대한민국 유기견 보호의 현주소”라고 했다. 30여 년 전 문을 연 이곳에는 강아지 600여 마리, 고양이 10여 마리가 지내고 있지만 제대로 된 견사나 시설이 부족해 마치 판자촌을 연상케 했다.

지난해 전국 동물보호센터에 입소된 유기·유실동물은 10만 마리가 넘는다. 사설 보호소 등 집계되지 않은 유기동물까지 포함하면 2~3배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판자촌 같은 견사…“보호소 역할 못해”

애신동산은 이애신 씨(84)가 30여 년 전 거리를 떠도는 유기견을 한 마리씩 거둬들이면서 시작됐다. 패널로 지은 견사가 14개, 천막 형태로 지은 견사는 수십 개가 넘는다. 새 식구가 들어올 때마다 급하게 철망으로 짜올린 견사들은 찬바람을 막아주지 못해 비닐을 덧대놓았다. 윤 부원장은 “100%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어 사료값 대는 것조차 빠듯하지만 정부 지원을 받거나 다른 보호소로 보내면 20일 안에 안락사되기 때문에 보낼 수는 없다”며 “더 이상 받으면 ‘학대’라는 생각에 추가 입소는 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애신동산 같은 민간 유기견 보호소는 전국 100여 곳에 달한다. 이 많은 유기견을 만들어낸 진원지로는 ‘강아지 공장’이 꼽힌다. 상업적 목적으로 강아지를 대량 사육하는 곳으로, 어미 개가 새끼를 낳자마자 발정제를 투여해 임신과 제왕절개를 반복하면서 강아지를 ‘공장처럼 찍어낸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면허도 없는 생산업자들이 배를 갈라 새끼를 꺼내고 비위생적 ‘뜬장(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바닥에서 띄워 철망으로 제작한 우리)’에 강아지를 방치하는 곳도 많다. 몇 해 전 케어, 카라 등 동물보호단체들의 조사를 통해 실태가 드러났다. 박소연 케어 대표는 “강아지 공장, 인터넷 중고사이트를 통한 동물 거래도 생명의 가치를 땅바닥에 버리는 일”이라고 했다.
유기동물 연 10만 마리… '공장서 찍어낸 개' 쉽게 사고 버린다
◆동물보호법은 ‘무늬만 개정’ 비판도

정부는 지난해 동물보호법을 개정했다. 올 3월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은 동물생산업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했다. 동물을 학대하면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처벌을 강화했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은 ‘무늬만 개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뜬장 신규 설치는 금지하지만 기존 뜬장은 일부 면적만 발판을 덧대 영구 사용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또 개정안 초안에는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에 ‘열, 전기, 물 등에 의한 물리적 방법이나 약품에 의한 화학적 방법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까지 포함됐다가 최종안에는 이 조항이 빠졌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담당부처의 이해관계 충돌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동물보호법 소관 부처는 농림축산식품부다. 이 중 반려동물을 담당하는 직원은 10명 이내다. 박 대표는 “농식품부의 주요 업무는 축산용 동물의 관리와 육성”이라며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부처가 반려동물 업무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동물보호법 소관 부처의 환경부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또 개정안이 시행돼도 여전히 동물학대자의 소유권을 박탈하거나 제한할 순 없다. 견주의 소유권을 박탈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주인이 동물 반환을 요구하면 거부할 수 없다. 박 대표는 “학대 동물을 주인 동의 없이 구조했다가 오히려 절도범이 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경기 포천 애신동산에 설치된 가건물 견사. 판자촌처럼 시설이 열악하다. 구은서 기자
경기 포천 애신동산에 설치된 가건물 견사. 판자촌처럼 시설이 열악하다. 구은서 기자
◆돈으로만 사고파는 입양문화 바꿔야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을 애견숍에서 쉽게 ‘구입’하고 ‘선물’하는 구조를 바꿔야 유기동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내년부터 반려동물을 구입할 수 없다.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지난해 10월 이른바 ‘강아지 공장’ 등에서 상업 목적으로 길러진 반려동물을 펫숍에서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동물보호소 등을 통해 구조된 유기동물, 국가 자격증을 갖춘 사육사가 공급하는 동물만 ‘입양’할 수 있다. 펫숍도 동물보호소나 구조대 측과 협력해 유기동물만 취급해야 한다.

독일에는 펫숍 자체가 없다. 전국에서 반려동물 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보호소를 통한 입양만 허용하고 있다. 보호소에서 치료, 재사회화를 거쳐 유기동물 90%가 입양된다. 영국은 반려동물 번식·판매업자에게 면허를 의무화하는 ‘면허제’를 시행 중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