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사회 현안을 세대 문제로 보는 경향을 '세대 게임' 개념으로 분석했다. / 사진=변성현 기자
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사회 현안을 세대 문제로 보는 경향을 '세대 게임' 개념으로 분석했다. / 사진=변성현 기자
가상화폐(암호화폐)는 지금 가장 ‘핫’한 최신 세대담론 소재다.

전사(前史)는 대략 이렇다. 2030은 ‘노오력’해도 길이 안 보인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글렀다. 이것저것 모두 포기한 ‘N포 세대’. 한 마디로 흙수저 청년이다. 누구 탓일까. ‘기울어진 운동장’을 설계한 기성세대가 범인이다. 일자리도 부동산도 주식도 그들에 유리하게 짜여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천만에. 영화는 현실과 다르다. 실은 청년을 위한 나라가 없다.

비트코인 광풍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제 가상화폐는 거의 유일한 계층 상승 기회다. 투기 아니냐고?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을 전전할 삶이 걸어볼 수 있는 “그나마 합리적인 선택”이다.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까지 검토한다는 정부 방침에 젊은이들이 들고 일어난 이유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의 ‘가상화폐 규제 반대’ 청원 참여자는 16일 현재 20만명을 넘어섰다. 기성세대가 마지막 남겨진 사다리까지 걷어차려 한다! 세대 착취의 스토리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기실 문제는 ‘세대’가 아니다.

세대사회학자인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사진)는 세대담론 오·남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세대 개념의 편의성과 가소성(plasticity: 속성이 유지되면서도 모양이 잘 변하는 성질)이 높은 탓이다.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의 갈등을 세대 갈등으로 착시하게끔 만든다.” 전 교수의 우려다. 가상화폐에 대해 직접 언급한 건 아니지만 올 초 출간된 그의 신작 〈세대 게임〉을 읽어보면, 이번 가상화폐 논란은 세대 프레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2030 가상화폐 열풍? 우리는 왜 '세대'를 앞세울까
최근 서강대 다산관 연구실에서 만난 전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광장을 촛불 청년과 태극기(맞불) 노인의 세대 대립구도로 본 것을 잘못된 사례로 들었다. 갈등의 전선은 ‘민주’와 ‘법치’였지, 세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가상화폐 논란의 쟁점 역시 세대가 아니다. 통화 안정성,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다른 관점과 우선순위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 잘못 설정된 세대담론이란 어떤 것인가.

“특정 세대를 과도하게 조명해 비난하고 책임 지우는 메커니즘이다. 청년 세대담론이 쏟아진다. 그런데 사실 어느 세대 할 것 없이 힘들다. 일례로 한국의 노년층은 어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빈곤율과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 젊은이들이 힘든 건 맞지 않나.

“젊은이들이 힘들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세대담론의 유통 구조다. 청년세대가 처한 곤경이 모두 착취하는 기성세대 탓이라는 인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일단 프레임을 만들면 그 안에서 싸우게 된다.

“사회 현안을 세대 문제로 해석하는 프레임이 유행한다. 세대는 같은 시간을 보낸 경험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이다. 추상적이지 않다. 접촉면이 넓다. 덕분에 세대로 나누는 구도와 거기에서 파생된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데 그러면서 정말 얘기해야 할 것들, 이를테면 사회적 불평등이나 부의 재분배 문제 따위가 ‘세대’에 가릴 위험성이 생긴다. 세대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계급, 젠더(사회적 성) 같은 실제 원인이 묻힐 수 있다.”
전 교수는 "프레임을 씌워 세대 갈등을 부각해 이득을 취하는 플레이어가 있다"고 말했다. / 사진=변성현 기자
전 교수는 "프레임을 씌워 세대 갈등을 부각해 이득을 취하는 플레이어가 있다"고 말했다. / 사진=변성현 기자
세대 프레임 내부에서 격렬히 쟁투를 벌이는 세대들이 있다. 그 이면에는 게임의 판을 깔고 동원과 조작으로 이득을 취하는 ‘플레이어’가 존재한다. 플레이어는 특정 세대를 비난케 하거나 특정 세대의 지지를 얻는 방식으로 게임을 몰아간다. 전 교수가 생각하는 ‘세대 게임’의 기본틀이다. 엉뚱한 문제로 싸우는 건 아닌지, 몰래 웃는 자는 누구인지 되새겨볼 것. 그래야 세대를 정확한 분석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 몇 년 전 ‘아버지와 아들의 일자리 싸움’ 구도가 있었다. 지금은 정규직 대 비정규직 구도가 부각된다. 세대 갈등이 아니라 일자리 갈등이었더라.

“비난의 세대 게임이다. 문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게 관건이다. 청년 취업난이 정말 양보하지 않는 기성세대 때문이었나? 노동시장 구조 때문이 아니라? 사실 일자리는 무한정 늘릴 수 없다. 생각해보면 어렵잖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프레임 안에만 머물면 계속 비난의 대상을 갈아타면서 싸우게 된다.”

- 무한 루프 같은데.

“프레임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

-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특정 세대의 책임도 아니고 일자리도 한정돼 있다면 자연스럽게 사회안전망 논의가 나오지 않겠나. ‘일자리가 부족해도 나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 혹은 ‘비정규직이 꼭 정규직 전환되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야겠지. 어떤 세대의 책임으로 모는 것보다 훨씬 답을 내기 어려운 문제다.”

전 교수는 태극기집회 참여 노년층을 '시간 고향'의 세대 정체성 수호 행위로 설명했다. / 사진=변성현 기자
전 교수는 태극기집회 참여 노년층을 '시간 고향'의 세대 정체성 수호 행위로 설명했다. / 사진=변성현 기자
그는 진보 성향 연구자다. 하지만 세대 문제에 있어선 청년 편에 섰다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노년층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전 교수는 태극기 집회의 악다구니를 납득 불가의 ‘시대착오적 별종’으로만 치부하지 않았다. 그들이 어떻게, 왜 태극기를 들게 됐는지 진지하게 탐구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의 심리는 무엇인가.

“액면 그대로 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어르신들도 박근혜의 부족함을 모르는 게 아니다. 숨겨진 목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분들에게는 ‘시간 고향’이 있다. 박정희 시대다. 산업화 역군이자 새마을 일꾼으로 조국 근대화에 기여한 자부심이 황혼의 삶을 지탱하는 원천이다. 그들은 박근혜로 표상되는 시간 고향의 붕괴를 참지 못했다. 박근혜 구명이 아니라 인지부조화 해결, 즉 스스로의 자긍심 수호를 위해 광장에 나와 맞불을 든 거다.”

- ‘틀딱(틀니를 딱딱거린다)’ 같은 노인비하 표현까지 보인다.

“당연히 문제다. 그런데 세대 간에 늘 사이가 좋을 수는 없잖나. 사적 일상에서의 표현이기도 하고. 내가 보기에 더 중요한 건 공적 무대의 플레이어, 이를테면 정치인의 발언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보라. 공적 자리에서 거침 없이 구체적 대상에 대한 혐오 발언(헤이트 스피치)을 한다. 편을 가르고 극단화해 그 오른쪽 끝을 지지 기반으로 삼는 홍 대표의 언행이야말로 ‘세대 게임 플레이어’의 전형적 방식이다. 세대 통합을 말하려면 공적 행위자의 잘못에 엄정한 잣대를 적용한 공개적 망신 주기가 맨 첫 번째 스텝이 돼야 한다.”

- 세대간 상호대화나 설득이 가능할까.

“글쎄. 맞불은 어르신들의 인정 욕망과 요구를 투사(投射)한 것이다. 박정희와 박근혜의 잘못을 왜 모르나, 참 답답하다 식으로 어르신들을 가르치려 들어선 곤란하다. 앞서 언급한 인지부조화는 팩트가 해결해주지 않는다. 도리어 반작용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무심(無心) 전략’이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무시가 아니라 논점으로 삼지 않는 거다. 일종의 냉각기를 갖는 셈이다. 차이를 인정하는 한 방식이기도 하다. 홍대 앞과 탑골공원이 같다면 이상하지 않겠나.”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나는 착한 패자 세대와 사악한 승자 세대의 이분법적 선악 구도에 반대한다. 갈등은 모든 사회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무의미한 세대 갈등들을 하나로 겹쳐 보이게 만들면, 우리는 싸우지 않아도 되는 일로 격하게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