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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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에서 근무하는 이모 과장은 ‘소모임의 여왕’으로 통한다. 와인 공연 사진 요가 등 몸담고 있는 동호회만 10여 곳에 달한다. 1주일에 두 번가량은 꼬박꼬박 ‘오프(오프라인 모임)’에도 참석한다. 모임 활동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이들만 100명이 넘는다. 최근 사귄 3명의 남자친구도 모두 동호회에서 만났다. 이 같은 이 과장의 ‘회사 밖 생활’에는 직장인 전용 취미활동 앱(응용프로그램) ‘소모임’이 도움을 줬다.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 있는 모임 카페는 섭렵한 지 오래다. 이 과장처럼 동호회 활동을 통해 새로운 인맥을 찾아 나서는 2030 직장인이 늘고 있다. 맨날 보던 사람들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인연’을 찾을 수도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그들은 입을 모은다.

‘핑크빛 메신저’ 된 동호회 앱

동호회를 찾는 직장인 중 ‘짝’을 찾기 위한 이들이 적지 않다. 같은 취미를 갖고 술자리를 통해 서로를 잘 알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서다.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 ‘골드미스’ 고 차장은 지난해 소모임 앱을 통해 한 야구 동호회에 가입했다. 야구는 잘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야구 동호회에 가면 남자를 많이 만날 수 있다”는 후배 얘기를 듣고 내린 결정이었다. 가입하고 나니 야구보다는 ‘술 동호회’에 가까웠다. 1박2일 여행을 떠나거나 동호회 내 기수 모임, 각종 지역 모임 등 다양한 명분을 내세운 술자리가 이어졌다. 문턱이 닳도록 모임에 드나들던 고 차장의 노력은 최근 결실을 봤다.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우리 동호회에서 만나 결혼하는 커플만 지난해 세 쌍이더라고요. 올해는 저도 이곳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하는 게 목표입니다.”

‘OO 만들기’와 같은 원데이 클래스도 ‘솔로 탈출’ 수단으로 인기가 많다. 수업을 주최하는 측에서 자연스럽게 이성 간 연결을 주선하는 경우가 흔해서다. 보험회사 직원인 정모씨와 대기업 사무직인 신모씨도 한 수제맥주 만들기 수업에서 만나 ‘싹’을 틔웠다. 수업에서 한 조가 돼 맥주를 제조하고, 2주 뒤 완성된 맥주 향을 함께 음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덕분이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황 과장도 3년째 살사댄스 동호회에서 ‘짝’을 찾고 있다. 황 과장은 “춤을 추는 동안 파트너와 사랑에 빠진 느낌이 들어 황홀하다”며 “삭막한 시대에서 매주 연애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게 살사댄스 동호회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인생의 전환점’ 제공하기도

동호회 활동이 단순히 ‘짝 찾기’ 수단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찾은 직장인도 적지 않다. 영화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는 동호회 덕분에 자신에게 진정으로 맞는 직장을 다시 찾았다. 그는 원래 한 제조기업의 홍보담당자였다. 입사한 지 3년이 지났을 때 취미활동 차 영화 소모임에 들어갔고, 2주에 한 번씩 감상한 영화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마침 동호회 안에는 영화계 인맥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다. 김 대리는 이들을 통해 업계 사람들과 꾸준하게 만나다가 결국 이직에 성공했다. 김 대리는 “동호회 활동이 인생을 바꿨다”며 웃었다.

헬스케어 기업에 다니는 윤 대리는 최근 독서모임 플랫폼인 ‘트레바리’에 빠져 있다. 4개월 멤버십 비용이 19만~29만원으로 적지 않지만,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보겠다는 생각이다. 최근에는 중국 시장을 알아보기 위해 ‘중국’을 키워드로 한 모임에 나갔다가 중국 영업을 하는 직장인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대표 등 다양한 인맥을 얻게 됐다. “모임을 나갈 때마다 매번 자극을 받습니다. 여러 경험을 해본 뒤 관심 있는 쪽으로 직장을 옮겨볼까 생각 중이에요.”

‘상부상조 인맥’ 형성은 기본이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한 계장은 한 달 전 직장인 토론 모임에 참석한 뒤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회원들로부터 ‘인기 스타’로 떠올랐다. 한 계장은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회원들에게 종종 재테크 상담을 해주거나 금리 조건이 유리한 금융 상품을 추천해주고 있다. 도움도 받는다. 자동차업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조언을 받고 생각보다 싸게 새 차를 구입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게 동호회 활동의 가장 큰 장점이죠.” 한 계장의 말이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모임 진상’ 많아

모든 동호회나 소모임 활동이 건전하고 생산적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다양한 곳에서 모인 많은 사람이 섞여 있어 크고 작은 갈등도 꽤 있다.

방송사에 다니는 김모씨는 한동안 열심히 다니던 와인 동호회 활동을 최근 그만뒀다. 바람 잘 날이 없을 정도로 잡음이 끊이지 않아서다. 어떤 날은 술만 먹으면 다른 회원들과 싸우는 회원 때문에 도망치듯 자리를 일찍 정리했고, 어떤 날은 취한 척하며 여성 회원에게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남성 회원 때문에 경찰까지 부를 뻔했다. “기분 전환하러 간 동호회인데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게 생겼더라고요. 깔끔하게 그만뒀습니다.”

교직원으로 일하는 김모씨는 최근 네이버 밴드를 통해 만난 볼링 소모임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모임에서 친해진 한 회원이 돌연 ‘볼링 장사꾼’으로 돌변해서다. 첫 만남 후 한동안 볼링도 치고, 맥주도 마시면서 친근하게 지내던 관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좋은 볼링용품이 있다”며 회원들에게 이런저런 상품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장사에 집착하는 그를 보면서 다들 씁쓸해했다. 결국 그는 퇴출당했다. “여러 곳에서 온 낯선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동호회인데, 항상 좋은 사람만 있다고 보기는 어렵죠. 씁쓸하더라고요.”

취미 활동을 즐기기 위해 모임에 나갔다가 ‘연인 찾기’에 몰두하는 사람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등산을 좋아하는 박모씨는 여러 사람과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에 최근 한 등산 모임에 가입했다. 산에 오르기 편하게끔 운동화를 신고 가벼운 복장으로 첫 모임에 나간 박씨는 다른 회원들의 차림새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박씨를 제외한 모든 여성 회원들이 소개팅에 나온 듯 ‘풀 메이크업’에 높은 굽의 신발까지 신은 채 나와서다. “진짜 산에 오르겠다는 목적으로 온 사람은 저밖에 없는 것 같았어요. 사심 가득한 모임을 한 번 경험하고 나니 동호회에 대한 편견만 생겼습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