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비리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선고공판이 끝난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경영비리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선고공판이 끝난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롯데그룹 임직원 9명에 대한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상동)의 판결은 검찰 기소가 무리수였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검찰은 횡령 배임액이 신 회장은 1753억원,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은 2238억원 등에 달한다며 각각 10년의 중형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훨씬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 신 회장은 판결 후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다.

◆‘영화관 매점 임대료’ 외 배임죄 전부 무죄

주요 쟁점으로 여겨진 롯데피에스넷과 관련한 471억원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 혐의는 ‘경영상 판단’이라는 롯데 측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2008년 롯데피에스넷을 인수한 이후 신 회장이 ATM 도입을 고려하며 롯데기공이 ATM을 만들 수 있는지 검토를 지시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해당 지시가 업무상 배임의 성립 요건을 충족하진 못한다고 판단했다. 신 회장이 ‘ATM 제조사를 롯데기공으로 하라’고 지시한 증거가 없어서다. 또 경쟁사와의 관계로 직접 생산할 동기가 충분했다는 점도 고려됐다.

코리아세븐 등 3개 계열사가 경영이 악화된 롯데피에스넷 지분을 인수하게 하고 유상증자에 참여하도록 해 롯데그룹에 재산상 피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 또한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상증자 당시 피에스넷이 부채과다 및 완전자본잠식 등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돼 자금 조달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피에스넷 지분에 투자한 계열사들도 장래 사업 방향에서 공동이익 추구 관계에 있다고 봤다. 이 같은 결정은 ‘합리적 경영판단’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가 유일하게 유죄로 본 배임죄는 롯데시네마 영화관 매점 임대권 관련이었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서미경 씨가 영화관 매점을 임대받아 수익을 올렸다는 혐의다. 하지만 재판부는 신 이사장이나 서씨의 회사가 노력과 영업을 통해 얻어낸 이익이 있고, 롯데시네마 측도 가족회사에 임대해주면서 피할 수 있었던 위험 비용이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손해액을 특정해야 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아니라 형법상의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했다.
경영비리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선고공판이 끝난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경영비리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선고공판이 끝난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증여세 포탈, 주식 매도 등도 줄줄이 무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2일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2일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검찰 공소 사실의 줄기를 이뤘던 총수 일가에 대한 불법급여 지급 의혹도 상당 부분 무죄가 났다. 재판부는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가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임원으로 선임해 급여를 지급한 것을 업무상 횡령에 해당하는 행위로 평가하기 어렵다”며 무죄라고 판결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신 전 부회장 또한 무죄가 선고됐다. 다만 서씨와 그의 딸 신유미 씨에게 제공된 급여는 유죄로 봤다. 롯데그룹에서 일한 사실이 없었음에도 급여를 줬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신 총괄회장에 대한 거액의 탈세 혐의도 전부 무죄로 결론났다. 신 총괄회장이 2006년 해외 SPC 및 다단계 출자구조를 이용해 서씨와 그의 딸 신씨에게 차명주식을 증여하며 증여세를 포탈했다는 의혹이다. 두 사람에 대한 증여는 공소시효인 10년이 지났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더라도 서씨는 국내 비거주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증여세 납부 의무 자체가 없다는 설명을 내놨다. 서씨가 사실상 일본에서 생활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신 총괄회장이 5개 비상장회사 주식을 3개 계열사에 매도하며 경영권 프리미엄을 가산하면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도 무죄가 됐다. 재판부는 “당시 매매대금을 고가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날 징역 4년에 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법질서를 준수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영할 책임이 있었음에도 사유재산처럼 처분한 행위는 용납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신 총괄회장이 나이가 많고 사실상 장기간 수형 생활이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신 총괄회장은 이날 재판에서도 거동이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 재판이 시작된 후 장시간 밖에서 대기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법정을 들락거렸다. 재판장이 징역 4년이라는 주문을 읽을 때는 목소리를 높여 ‘나가, 나가라고’라고 수행원에게 명령하기도 했다. 선고가 모두 끝난 뒤에도 지팡이를 힘없이 흔들며 ‘나가라니까’를 연이어 외쳤다.

이상엽/고윤상/박종관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