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몰렸던 이영렬 무죄에 청와대·검찰 '당혹'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사진)이 8일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전 지검장이 낸 식사비는 하급자 격려 차원이어서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 전 지검장을 ‘적폐 검사’로 낙인찍고 검찰개혁의 시동을 걸었던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 전 지검장은 법무부의 면직 처분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식사비·격려금 구분해 위법 판단해야”

검찰은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이 전 지검장이 법무부 간부 2명에게 각각 9만5000원 상당의 식사와 각각 100만원이 든 격려금 봉투를 전달해 1인당 총 109만5000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다며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다. 부정청탁금지법은 명목과 관계없이 동일인에게 1회에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조의연)는 음식물과 금전을 구분했다. 재판부는 “격려·위로·포상 목적으로 제공한 금품인지 여부는 제공자의 의사뿐 아니라 수수자와의 직무상 관계, 제공된 금품의 종류와 가액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법 취지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식사비는 부정청탁금지법상 예외 조항에 해당한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공공기관이 소속 공직자나 파견 공직자 등에게 지급하거나 상급 공직자가 격려·포상 등의 목적으로 하급 공직자에게 제공한 금품이라는 설명이다. 검사가 검찰청과 법무부를 오가며 파견근무하는 관행을 감안할 때 상급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격려금도 100만원을 초과하지 않아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금액이 100만원 이하일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한 조항의 해당 여부가 문제 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형법상 형벌인 벌금이 아니라 행정제재 조치인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는지 따져볼 문제라는 설명이다.

선고 후 이 전 지검장은 기자들과 만나 “법원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대검 감찰본부는 “판결문을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적폐 수사에 타격 불가피” 전망도

이 전 지검장은 문재인 정부 검찰 인적개혁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새 정부 출범 전만 해도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됐다. ‘국정농단’ 사건의 특별수사본부장을 맡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기소까지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특수본 수사 종료 나흘 후에 후배 검사들과 가진 만찬 자리가 알려지면서 일순간에 개혁 대상으로 추락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통해 법무부와 검찰청이 즉시 감찰을 실시하라고 지시까지 내렸다.

이를 신호탄으로 검찰 간부들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이 전 지검장 후임으로 사법연수원 5기 후배인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전격 발탁했다. 연이어 윤갑근 대구고검장,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 전현준 대구지검장,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 등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시켰다. 법무부는 ‘과거 중요 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의 문제가 제기된 검사들’이라고 인사 배경까지 설명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정치적인 접근으로 이 전 지검장을 무리하게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 6월 법무부가 이 전 지검장과 만찬에 동석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면직 처분을 내릴 때도 징계 수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았다. 법조계 고위 관계자는 “이날 판결로 검찰은 물론이고 청와대까지 소위 ‘적폐 수사’의 정당성을 의심받게 됐다”고 말했다.

김주완/이상엽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