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개포동에 이르는 왕복 10~14차로의 영동대로(永東大路). 강남의 대표적 도로인 이곳의 한자는 영동(永洞)이 아니라 영동(永東)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대규모 거리응원이 벌어졌고, 한류스타들의 거리공연장으로도 쓰이는 이 유명한 도로는 ‘영등포의 동쪽에 있는 도로’라는 뜻이다.
40년 긴 잠 깨고… 영등포구, 예술과 핀테크로 부활 날개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 한강 이남, 즉 강남의 중심지는 단연 영등포구였다. 1900년 문을 연 영등포역은 경부선과 경인선의 분기점이었다. 사통팔달 교통망 덕에 사람이 몰리고 산업은 발달했다. 역 앞에는 상업시설과 대형 방직공장, 철재 상가가 넘쳐났다.

그러나 1970년대 지금의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영등포구의 위상은 점점 떨어졌다. 역전의 공장들은 영등포를 떠났고 작고 낡은 철공소와 집창촌, 쪽방촌 등이 남았다. 지금도 유동인구가 하루 30만여 명에 달하지만,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와 백화점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낙후됐다는 평가다.

그랬던 영등포구가 40여 년간의 긴 잠을 깰 준비를 하고 있다. 여의도와 영등포역 앞에 핀테크(금융기술) 클러스터를 조성해 ‘서남권 경제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게 영등포구의 구상이다. 예술인들이 옮겨와 예술촌으로 변신한 문래동 일대는 문화·예술 거점으로 조성하고 쇠락한 기계·금속 제조업은 스마트화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계획이다.

“영동대로가 왜 영동대로인 줄 알아?”

40년 긴 잠 깨고… 영등포구, 예술과 핀테크로 부활 날개
영등포구의 청사진은 영등포역 일대가 핵심이다. 우선 영등포역사와 철도 인근에는 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이 대거 마련된다. 역 앞 경인로는 핀테크 클러스터로 조성된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경인로 핀테크 클러스터를 여의도의 금융과 함께 듀얼 클러스터로 만드는 게 목표”라며 “신산업과 일자리를 키워드로 도시 재생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1000여 개 철공소와 예술인이 공존하는 문래동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계 소리 요란하던 철공소 집적지에 예술인이 몰리면서 동네 풍경이 달라졌다. 예술인들이 공장 담벼락과 철문, 거리 곳곳에 그림을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삭막하던 거리 풍경도 바뀌었다. 그 풍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메고 이곳을 찾는 젊은이가 늘어났고, 이들을 겨냥한 카페와 레스토랑도 속속 들어섰다.

영등포구는 문래동에 문화·공연 인프라를 확충해 ‘서남권 문화·예술 거점’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또 기존 철공소들은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해 스마트 제조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관내 700개가 넘는 병·의원을 활용해 ‘영등포 스마트 메디컬 특구’도 조성할 예정이다.

영등포구는 이 같은 밑그림을 놓고 세부적인 ‘도시재생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서울시의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대상지로 선정돼 올해부터 2021년까지 최대 500억원의 마중물 사업비를 지원받는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경부선 철도를 지하화해 동서로 단절된 영등포역 주변을 개발하는 구상도 하고 있다”며 “영등포역이 지하로 내려가면 역 일대는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대는 정책마다 ‘최초’…아이디어 특별구

영등포구에는 ‘최초’라는 이름이 붙는 사업이 많다. 2008년 전국 최초로 도입한 ‘함께살이 사업’이 대표적이다. 사회적 활동이 가능한 노인이 거동이 불편한 홀몸노인의 말벗이 되고 일상적인 도움을 주는 사업이다. 반응이 좋아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노노케어(老老CARE)’라는 사업으로 벤치마킹했다는 게 영등포구의 설명이다.

노인전문상담센터도 2011년 서울 최초로 설립했다. 상담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노인을 발굴, 지원하는 사업이다. 영등포구는 ‘시니어상담사 자격증’을 신설해 상담센터에 파견, 일자리 창출 효과도 보고 있다. 2015년부터 운영한 치매전문 데이케어센터 역시 전국 최초다. 이곳에서는 치매 검진과 예방, 치매 지연 프로그램 등이 운영된다.

영등포구는 다문화 정책에도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많은 외국인 인구를 감안해 지난 9월 전국 최초로 ‘다문화·외국인 정책 빅데이터 분석’에 나섰다. 외국인의 스마트폰 이동 정보를 이용해 유동 정보를 분석하고 관련 정책에 반영한다는 취지다.

이 밖에 주민에게 편지를 받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구민을 발굴하는 ‘빨간우체통 사업’(1월), 하천 범람으로 주민들이 고립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마련한 예·경보 체계인 ‘멀티 재난예경보시스템’(10월) 등도 영등포구가 첫손가락에 꼽는 사업이다.

박상용/백승현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