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통' 이영복 다대·만덕 사건 때보다 높은 징역 8년
뇌물·불법 정치자금 연루 정치인·고위 공무원 줄줄이 실형
부산 뒤흔든 엘시티 비리… 사법부 1심 20개월 만에 일단락

부산의 정관계를 뒤흔들었던 해운대 엘시티 비리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1차 단죄 작업이 일단락됐다.

지난해 3월 내사를 시작한 검찰이 올해 3월 엘시티 실소유주 이영복(67) 씨를 비롯한 24명을 기소한 이후 24일 이 씨의 1심 선고가 나기까지 1년 8개월여 만이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초고층 건물 인허가, 특혜 의혹 등을 둘러싼 비리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이 씨는 이날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8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검찰의 구형량 8년을 그대로 받아들여 선고한 것은 그만큼 이 씨의 죄를 무겁게 봤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이영복의 닫힌 입 열렸다

범죄 혐의가 포착되면 잠적했다가 다른 일로 떠들썩할 때 자수하고 검찰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엘시티 시행사 실소유주 이영복 씨의 고난도 수법이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이 씨는 1990년대 부산 '다대·만덕 택지전환 특혜 의혹 사건' 때도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갑자기 잠적, 2년여간 도피행각을 벌이다 2001년 12월 19일 권력형 비리 사건인 '이용호 게이트'로 떠들썩할 때 돌연 자수했다.

검찰 수사에서 정관계 로비 의혹을 끝까지 부인한 이 씨는 횡령, 배임,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만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705억원이 넘는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이 씨는 이번에도 비슷한 수법을 썼다.

검찰이 수사망이 좁혀오자 지난해 8월 8일 갑자기 잠적한 이 씨는 도피생활 중에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수사 상황 등을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의 공개수배에도 도피생활을 계속하던 이 씨는 거의 100일 만에 자수했다.

당시는 국정농단 사건인 '최순실 게이트'에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이었다.

이 씨는 '자물통'이라는 별명처럼 검찰 수사 초기 입을 굳게 다물었으나 7개월여에 걸친 집요한 수사 압박에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청렴성과 공정성 손상"…고위 공무원·정치인 줄줄이 실형

이 씨가 금품이나 정치자금을 줬다고 진술한 고위 공무원과 유력 정치인은 1심 재판에서 줄줄이 실형을 받았다.

자유한국당 배덕광(69·부산 해운대구을) 의원은 이 씨로부터 현금 5천만원을 받고 술값 2천700여만원을 대납하도록 한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부산의 대표 친박 정치인인 현기환(57)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 씨에게 3억7천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허남식(68) 전 부산시장은 선거 캠프 비선 참모인 이모(67) 씨와 공모해 이 씨로부터 3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1심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최측근 인사인 정기룡(60) 전 부산시장 경제특보와 김모(68) 씨도 엘시티 비리에 연루돼 각각 징역 2년(2심 징역 1년 6개월),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다.

법원은 고위 공무원이자 정치인인 이들이 자신의 직분에 맞는 고도의 청렴성과 도덕성을 저버리고 부정한 금품을 수수했다며 강력한 단죄 의지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통으로 이들의 범행으로 고위 공무원의 청렴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크게 손상돼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지적했다.

◇ 인허가·특혜 로비설 '풀풀' 엘시티
엘시티 사업은 1990년대 중반 미포에 자리한 옛 국방부 땅을 대상으로 한 부산시의 종합해양온천지구 개발 구상에서 시작됐다.

이후 부산도시공사가 2007년 6월 호텔과 콘도 같은 상업시설만 짓는 조건으로 민간사업자를 모집했고 이 씨가 회장으로 있는 청안건설 등 20여 곳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사업권을 땄다.

상업시설로는 돈이 되지 않아 고급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얘기가 컨소시엄 측에서 나왔다.

그러나 엘시티 터 일부가 중심지 미관지구여서 아파트를 지을 수 없었다.

부산시는 2009년 12월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엘시티 전체 터를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일반미관지구로 바꿔줬다.

엘시티 사업대상 일부 지역은 건물 높이를 제한하는 해안경관 개선 지침이 적용된다는 사실이 또 다른 걸림돌이었다.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이에 대해 해안경관 개선 지침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해 아무런 높이 제한을 받지 않고 아파트가 포함된 초고층 주거복합단지를 지을 수 있게 됐다.

엘시티는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와 교통영향평가도 없이 사업계획이 승인돼 당시 정관계 로비설이 증폭됐다.

◇ 엘시티 미래와 남은 숙제는

검찰의 장기간 수사로 세간에서 의혹으로만 떠돌았던 엘시티 사업 관련 금품 로비 의혹들이 구체적인 범죄사실로 드러났고 이 씨를 비롯해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법정에 섰다.

하지만 엘시티 수사가 나름의 한계를 보였다는 지적도 있다.

먼저 법무부가 단일 사업장으로는 이례적으로 엘시티 사업지를 투자이민제 적용 대상으로 지정한 것, 포스코건설이 갑자기 시공사로 엘시티 사업에 뛰어든 배경, 부산은행이 엘시티 측에 특혜 의혹이 짙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해준 점 등은 실체와 배경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안종범(57·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 수첩에 엘시티 민원 관련 메모가 있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권 실세가 깊숙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여전하다.

검찰은 엘시티 이 씨가 안 전 수석을 통해 하나은행에 PF 관련 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이 있다고 했지만 그 이상은 설명하지 못했다.

엘시티로부터 '검은 돈'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는 현 전 수석과 배 의원, 정 전 특보와 전·현직 부산시장의 측근 2명이 구체적으로 엘시티 비리에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분명하게 밝혀내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 씨나 정치인·고위 공무원의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엘시티 해운대관광리조트는 2019년 11월 완공 계획으로 공사가 한창이다.

높이 411.6m의 101층 랜드마크타워 1개 동과 높이 333∼339m의 85층 주거 타워 2개 동은 현재 80층까지 공사가 진척되는 등 37%의 공정률을 보인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엘시티는 부산시민의 공공재산인 해운대해수욕장을 사유화한 범죄행위"라며 "도시미관지구에서 아파트 건축이 가능한 일반미관지구로 바뀌고 최고 60m인 고도제한이 풀리는 과정, 포스코의 시공사 선정 과정, 엘시티에 대한 군인공제회의 이자 감면 등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참여연대는 지난 5월 이 같은 내용을 조사해달라고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고 최근 엘시티 43세대 특혜분양과 이영복의 도주와 은닉을 도와준 이들을 추가 고발했다.

◇ '럭셔리 타운' 엘시티는 어떤 곳?

엘시티는 부산 해운대 미포의 초대형 주상복합단지다.

포스코건설이 시공을 맡은 엘시티는 해운대해수욕장과 맞닿은 옛 한국콘도, 옛 국방부 땅 등을 포함한 미포지구 6만5천㎡에 건설되고 있다.

101층짜리 1개 동, 5층짜리 주거 타워 2개 동으로 건설되고 있으며 여기에 58∼78평형 등 공동주택(아파트) 882가구를 비롯해 561실 규모의 레지던트 호텔, 296실짜리 6성급 관광호텔, 쇼핑타운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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