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체납자라는 이유만으로 출국을 금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와 법조계 안팎의 주목을 끌고 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는 A씨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출국 금지 기간 연장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한때 음반제작사를 운영하다 2004년 회사를 폐업한 A씨는 1998년부터 2010년까지 세무당국에서 부과받은 세금 3억여원, 여기에 가산금까지 붙어 올 3월 기준 총 4억1000여만원을 체납했다.

재판부는 “조세 체납을 이유로 한 출국 금지는 체납자가 재산을 해외로 도피하는 등 강제 집행을 곤란하게 하는 걸 막으려는 게 주된 목적”이라며 “단순히 일정 금액 이상의 조세 체납 사실만으로 출국 금지하는 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비춰 허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2009년 6월 A씨에게 국세 체납을 이유로 6개월의 출국금지처분을 처음 내렸다. 이후 현재까지 8년간 6개월 단위로 계속 출금기간을 연장해왔다.

출입국관리법은 5000만원 이상의 국세 등을 정당한 사유 없이 체납한 경우 6개월 이내 기간을 정해 출국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엔 출국 금지 기간을 6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출국 금지는 통상 지방자치단체나 국세청에서 고액체납자 중 해외로 재산을 은닉하거나 도피 우려가 있는 체납자에 대해 법무부에 요청해서 이뤄진다.

체납자의 생활실태, 조세채권 확보 가능 여부, 국외 출국 횟수, 체류 일수 등을 조사해 처분할 재산이 없는데도 해외를 자주 드나들거나 가족들이 부유한 생활을 하는 등 재산 해외 은닉 가능성이 큰 체납자를 출국 금지 대상자로 선정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7년 7월 기준 약 1만 명의 출국 금지자 중 세금 체납으로 인한 경우는 4925명이다. 2012년(2161명)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