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만 앞세운 인권위…교사·경찰 '부글부글'
학생들의 휴대폰을 아침에 수거했다가 하교 때 돌려주는 방침이 학생 인권을 침해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에 학교가 한숨을 쉬고 있다. 휴대폰뿐 아니라 상·벌점제 폐지, 초등학생 일기장 검사 금지 등 학교에 내려온 인권위 권고가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비단 학교에만 국한한 문제는 아니다. 인권위 위상은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권고안을 받아든 기관들은 “틀린 말은 없지만 현실적인 제약을 따져보면 그대로 따르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 토로하고 있다.

◆“학교 현실과 동떨어진 권고”

인권위는 조회시간에 휴대폰을 수거해 종례시간에 돌려주는 경기 A중학교의 ‘학교생활인권규정’을 시정하라고 지난 17일 권고했다. 헌법이 보호하는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단에서다. 해당 학교장에게는 학교생활인권규정 개정을, 경기교육감에게는 도내 학교의 휴대폰 사용 전면 제한 규정을 점검·개선하도록 했다.

교사들은 반발하는 분위기다. 휴대폰 사용을 규제하지 않으면 수업 및 학습의 질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휴대폰을 수거하는 것은 교사에게도 부담이다. 분실할 경우 변상하는 등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른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육권을 고려한 조치라는 게 학교 측 설명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 폭력과도 관련이 깊다”며 “휴대폰 사용을 규제하지 않으면 교내에서 선배 등에게 수시로 호출당하거나 카카오톡으로 온종일 괴롭힘당하는 걸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인권위 권고안이 오히려 학교 폭력을 제대로 처벌할 수 없는 근거로 악용되는 사례도 많다는 전언이다. 상·벌점제 폐지, ‘어떤 경우에도 학생의 학습권을 박탈할 수 없다’는 권고안 등이 대표적이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렸을 때 가해 학생 측이 인권위 권고안을 근거로 ‘가해 학생의 학습권을 박탈하지 말라’고 나서면 피해 학생과 격리하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는 얘기다.

◆“공익에 배치”…의료계·경찰도 난감

학교뿐 아니라 곳곳에서 인권위에 대한 불만이 만만찮다. 인권위 권고안이 큰 틀에선 타당하지만 현실과의 괴리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의료계는 지난 7월 ‘보건소장에 의사를 우선 임용하는 것은 차별행위’라는 인권위 권고의 재심의를 요청했다. 추무진 의사협회 회장은 “보건소 기능과 역할을 감안할 때 의료 전문가인 의사를 보건소장에 우선 임명하는 것은 국민 건강권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며 “현실을 고려해 합리적 논의 과정을 거쳐서 재심의해 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의 성별 분리 모집이 헌법의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인권위 판단도 마찬가지다. 경찰개혁위원회가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여 남녀통합 모집을 권고했지만 경찰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출동 현장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달엔 육아휴직을 낸 교사의 휴직 기간도 교육 경력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인권위 권고안에 경기교육청이 “자칫하면 특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불수용’ 의사를 밝혔다.

최근 인권위 개선 권고를 받은 한 기관 관계자는 “인권위는 ‘정치적인 선’에 집중하는 듯하다”며 “공익에 대한 좀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