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된 남재준·이병기는 수사·영장심사서 박근혜 직접 거명 안 해
이병호만 영장 기각…檢 "상납 가장 길고 정치관여 무거워 재청구 검토"
국정원장 3인 엇갈린 운명… '朴요구' 자백 이병호 19일 재소환
청와대에 40억원대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뇌물공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장 3명의 운명이 17일 엇갈렸다.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새벽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구속영장은 기각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병호 전 원장의 영장 기각과 관련해 전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의 '깜짝 자백'이 주된 영향을 준 게 아니냐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이 전 원장은 전날 심사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직접 국정원 자금을 요구해 특수활동비를 제공했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앞서 검찰 조사를 받을 때는 '청와대 측' 요구로 월 1억원대의 특활비를 상납했다는 사실까지는 인정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 전 원장이 전날 갑작스럽게 박 전 대통령을 거명하자 곁에 있던 변호인마저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달리 남 전 원장과 이병기 전 원장은 검찰 조사와 법원 영장심사 때 모두 청와대 측의 요구에 따라 특활비를 상납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의 청와대 특활비 상납을 시작한 남 전 원장은 자금 요구를 한 인물이 안봉근 전 비서관이라고 심문 과정에서 밝혔다.

검찰은 이병호 전 원장의 갑작스러운 박 전 대통령 언급이 법원 입장에선 진실 규명에 협조하는 태도로 인식돼 증거 인멸 우려를 희석해 영장 기각 결과로 이어졌을 것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재임 기간이 가장 긴 이 전 원장의 경우 세 전직 원장 중 상납액이 가장 많은 25억∼26억원에 달하고 '진박 감정용' 청와대 불법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을 제공한 정치관여 혐의까지 별도로 받는다는 점에서 구속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검찰은 19일 오후 2시 그를 다시 소환해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언제 어떤 식으로 특활비 상납 요구를 받았는지를 조사하고 나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남재준·이병기 전 원장 구속으로 40억 상납 의혹 수사의 중요 관문을 넘은 검찰은 후속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검찰은 국정원 특활비를 매달 300만∼500만원씩 별도로 받은 것으로 조사된 조윤선 전 정무수석·신동철 전 정무비서관과 '진박 감정용' 여론조사에 관여한 현기환·김재원 전 정무수석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현기환·김재원 전 수석 등에 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며 "수사는 단계 단계로 이어지는 것으로 이제부터 여러 가지 남은 의혹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병호 전 원장 보강 조사 등을 거쳐 이르면 이달 안에 의혹의 정점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은 경호 문제 등을 고려해 서울구치소 방문 조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국정원장 3인 엇갈린 운명… '朴요구' 자백 이병호 19일 재소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