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산재 불인정' 근거 일일이 반박…법조계 '이례적' 평가
역학조사 결과 단순 적용 지적…사업장 발병률 일반보다 높은 점도 거론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故) 이윤정씨의 사건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다시 2심 재판을 열게 되면서 향후 이씨 측 승소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1997년 고교 졸업 후 삼성전자 온양공장 반도체 조립라인 검사공정에서 일하다 2003년 퇴직한 이씨는 2010년 뇌종양이 발병해 2012년 사망했다.

대법원은 14일 '이씨의 뇌종양을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결했다.

15일 산재사건 전문 변호사들은 전날 선고된 대법원 판결이 단순히 산재인정 여부를 다시 재판하라는 취지가 아니라 '산재를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 이유로 2심 법원이 산재로 인정하지 않은 핵심 근거들을 대법원이 조목조목 반박했다는 점을 들었다.

좀처럼 뒤집기 어려워보였던 역학조사 결과와 의학계 의견에도 맹점이 있다는 지적을 대법원이 판결문에 구체적으로 담은 것이다.

2010년 7월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이 잦아지자,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연구원은 조사결과 이씨가 근무했던 온양공장 C라인에서 유기용제와 납, 비전리방사선 등 뇌종양과 관련성이 언급된 물질의 노출수준이 낮으므로 이씨의 뇌종양을 산재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이후에도 논란이 계속되자 연구원은 2012년 고용노동부의 요청으로 삼성전자 등 반도체업체의 조립라인을 대상으로 작업환경 및 유해요인 연구를 시행했다.

이 연구에서도 화학물질의 공기 중 농도가 낮고, 반도체 조립라인 검사공정의 방사선 노출 선량도 전부 자연방사선 수준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2심은 이를 토대로 이씨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이 필요한 심리를 충분히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우선 사업장에서 측정된 발암물질이 기준범위 안에 있다고 해도 노동자들이 장기간 노출될 경우 건강장애를 초래할 수 있고, 여러 유해요소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 역학조사와 연구가 노동자들이 근무하던 당시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시점에 이뤄져 작업환경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씨가 퇴직 후 7년이 지나 뇌종양에 걸린 점도 대법원은 해석을 달리했다.

2심은 뇌종양을 일으키는 '교모세포종'이 빠른 성장을 보인다는 의학적 견해를 근거로 '7년이나 지난 뒤 생긴 뇌종양은 산재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종양이 빨리 성장·악화한다는 의미일 뿐 발암물질 노출 후 발병까지 이르는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봤다.

퇴직 7년 후에 얻은 뇌종양도 업무 관련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끝으로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뇌종양 발병률이 한국인 전체 평균발병률보다 높다는 점 역시 산재 판정의 근거가 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의 근거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충분한 심리가 이뤄졌는지를 검토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통상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로 판례를 변경할 경우가 아니면 대법원은 다시 재판하라고 결정하는 때에도 하급심 판단의 결함을 법리적 수준에서만 언급하고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다시 열릴 2심에서 재판부가 대법원의 판단 취지와 동떨어진 판결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법 '삼성반도체 뇌종양' 쟁점 조목조목 판단… '산재인정' 유력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