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의 파견·용역 근로자 중 70%가량은 청소·경비·설비 업무다. 또 기간제 근로자의 60%가량은 사무보조와 조리 업무다. 정부가 2020년까지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20만5000명의 비정규직 중 절반 이상이 이들 5개 직무에 속하는 셈이다.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이참에 그동안 공언해온 공공기관 직무급제를 이들에게 우선 적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후 시행착오를 거쳐 세부적인 업무지표와 임금체계를 만든 뒤 공공기관 전체로 직무급제를 확대하겠다는 게 정부 복안이다. 정부 관계자는 “공공부문 전체에 도입해 틀이 마련되면 중장기적으로 민간기업까지 확대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에 본격 착수함에 따라 공공기관과 재계, 노동계 전반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질 전망이다. 기관이 부담해야 할 초기 인건비 부담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공서열식 임금 상승 막아 청년고용 확대"… 비정규직 문제 해법될까
◆연공서열식 호봉제 폐지

지방자치단체에서 청소 일을 하는 A씨는 현재 전체 30호봉 중 21호봉을 적용받아 320만원가량의 월급을 받는다. 여기에 명절휴가비로 1년에 기본급의 100%와 중식비(16만원), 복지포인트를 받는다. 해당 지자체의 기본급 인상 원칙에 따라 내년에는 월급이 3.5% 오를 예정이다.

반면 서울시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는 용역 B씨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시급기준(시간당 8329원)에 따라 월 180만원가량을 받고 있다. 중식비나 복지포인트는 없다. 이렇듯 지금은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기관별로 임금이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청소·경비·설비·사무보조·조리 등 5개 분야에 직무급제가 적용되면 A씨와 B씨는 업무강도가 특별히 다르지 않는 한 동일임금을 받게 되는 식이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이번 1단계 직무급제는 기존 정규직의 반발 등을 감안해 신규 정규직 전환자에게만 적용하기로 했다. 호봉제는 폐지된다. 그렇다고 임금이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직급별 숙련도와 업무 중요성에 따라 임금이 달라진다. 다만 임금 구간이 20~30개에 달하는 호봉제와 달리 직무급제에선 임금 구간이 보다 단순해진다.

학계에서는 청소직의 경우 대략 200만~300만원에서 월급이 정해지고 임금 구간은 5~6단계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전체 공공부문을 16개 직무로 나누고 직무별 임금 인상구간은 6단계로 구성돼 있다. 정부는 당초 공공기관에 ‘임금체계 표준안’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려다가 도입을 의무화하기 위해 지침 형태로 하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령화, 비정규직 문제 해결될까

직무급제 도입은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철폐 정책과 맞닿아 있다. 정규직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정하면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차별이 해소되고 정규직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여기에 기존 연공서열식 호봉제 때문에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갖기가 어렵다는 분석도 한몫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한국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단계에서 호봉제로 인해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고 청년 취업은 위축되고 있다”며 “정년 연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직무급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직무급제를 적용하면 초기 임금 수준이 오르겠지만 인상 단계가 낮아 중장년층이 됐을 때 기대 연봉은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연공서열제를 선호하는 양대 노조의 반발이 예상된다. 정부가 노사정 대화에 비정규직 노조 등을 참여시키려는 것도 직무급제를 선호하는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통해 주류 노동계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고경봉/심은지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