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노총 중심 노동계 구도 흔들리나
정부가 공공부문부터 호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직무급제로 전환키로 하면서 노동계에서 적지 않은 파장이 불가피해졌다. 일각에선 양대 노총(한국노총·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노동운동 구도에 변화가 생기고 산별노조 힘이 과거보다 커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직무급제는 20~30단계에 달하는 호봉 대신 소폭의 임금 상승구간만을 두는 식이어서 예전처럼 연봉이 해마다 오르는 것은 힘들게 됐다. 호봉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직장 초년병에게 유리하지만 장기 근속자들은 불리한 구조다. 그렇다보니 장기근속자 중심의 양대 노조에서는 직무급제 도입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크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2015년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을 때도 노동계의 반대 목소리가 컸다”며 “직무급제는 아예 임금체계를 바꾸는 것이어서 저항이 더 거셀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도 임금체계표준안 발표를 앞두고 이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전체 노동자의 90%인 비조직 노동자를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언급하거나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이 “대기업 정규직이 주도하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대신 비정규직이 노조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 것도 정부의 직무급제 전환 추진을 앞두고 양대 노총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정규직 노조의 힘을 빼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직무급제 도입으로 노사관계도 환경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우선 양대 노총 중심의 노동계 구도가 흔들리고 산별노조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가 청소·설비 등 5대 무기계약직에 대한 직무급제를 도입하면 소속 기관별로 노사 협상이 이뤄지기보다는 직무별 노조가 꾸려져 단체교섭 주체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으로 직무급제가 활성화되면 단일 호봉제가 폐지되면서 앞으로 직능별 노조나 산별 노조가 사측과의 협상을 주도하게 된다. 직무급제를 도입한 미국 독일 영국 등은 이미 산별 노조를 통한 협상이 주류로 자리잡았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