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내년 2월9일 개막하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이제 100일도 남지 않았다. 한국 남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발걸음도 분주해졌다. 대표팀은 오는 6일 오스트리아로 출국해 10일부터 인스브루크에서 열리는 2017 유로아이스하키챌린지(EIHC)에서 덴마크 오스트리아 노르웨이를 상대로 3연전을 치른다. 이들은 모두 2018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월드챔피언십(1부리그)에 출전하는 전통의 강호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국가대표팀의 실력을 점검할 좋은 기회다. 상대 팀 전력 분석과 대표팀 소집으로 바쁜 백지선 대표팀 감독(50)을 지난 2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안녕하세요”라며 크고 두꺼운 손을 내민 백 감독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 간 교포다. 영문 이름은 Jim Paek. 그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아이스하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살아있는 전설’이다. 아시아인 최초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 진출했고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1991년, 1992년 두 번이나 우승해 스탠리컵을 들어올렸다. NHL에서 우승을 경험한 유일한 아시아 선수다. 백 감독은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건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대표팀이 한가족처럼 뭉쳐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며,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4년간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내겠다”고 강조했다.

긍정 앞에 장애물은 없다

[人사이드 人터뷰] "언더독들의 평창 진격… '벌떼하키' 기대하세요"
평창동계올림픽 남자아이스하키 A조에 속한 한국은 세계랭킹 1위 캐나다를 비롯해 체코(6위) 스위스(7위)와 맞붙는다. 세계 최강팀이 모인 ‘죽음의 조’라 불릴 만하다. 개최국에 주어진 자동출전권으로 참가하는 한국은 12개 본선 진출국 가운데 세계랭킹(21위)이 가장 낮다. 백 감독은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조 편성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며 “하지만 놀란 건 그때뿐,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뭘 준비해야 할까. 해법을 찾아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우린 이길 수 없어’ ‘망했다’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리가 보완해야 할 점을 찾고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 오히려 강한 동기부여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백 감독은 ‘기적’을 보여준 전력이 있다. 지난 4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남자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 1그룹A(2부리그) 5차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인 IIHF 월드챔피언십 승격 자격을 얻었다. 2, 3부리그를 전전하던 한국 아이스하키 사상 첫 1부 리그 진출이었다. 이때 백 감독은 선수들 및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62)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이번 성과의 가장 큰 원동력은 백 감독이 늘 강조하는 ‘긍정의 힘’이었다. 그는 항상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그는 “감독으로 부임한 뒤 한국 대표팀의 문제점을 파악했는데 핵심은 승리 경험이 없는 선수들의 자괴감과 패배감이었다”며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그가 강조한 첫 번째는 복장이었다. 그는 “보기 좋으면 기분이 좋고, 기분이 좋으면 운동도 잘한다(look good, feel good, play good)”며 “새집 머리에 슬리퍼를 신은 국가대표 선수를 누가 자랑스러워하겠는가. 항상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갖고 그에 걸맞게 입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인치, 1% 차이가 승리를 만든다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백 감독 부임 전과 후’로 나뉠 만큼 전력이 향상됐다. 그는 “선수들이 매일 1인치씩 더 전진하고 1%씩 기량이 향상된다면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는 여섯 명이 한 팀을 이뤄 경기하기 때문에 선수당 1%씩 향상된다면 팀 전체로 봤을 때는 6% 이상의 전력 강화 효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백 감독은 선수별 데이터 분석과 경기 모니터링을 꼼꼼하게 한다. NHL 선수들의 슛 동작을 한국 대표팀 선수들과 비교 편집하기도 했다. 그들은 한국 선수의 슛 동작보다 많게는 1초 정도 더 빨랐다. 선수들은 시간 차를 확인하자 놀랐다. 백 감독은 “공을 잡아두는 순간부터 칠 때까지 잡스러운 동작을 모두 버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대표팀에 맞는 전략도 내놨다. ‘벌떼하키’ ‘상어전법’이다. 그는 “벌떼처럼 뭉치고,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달려들라”고 선수들에게 주문한다. 벌떼하키는 한국의 강점인 스피드를 살려 한 선수에게 두세 명이 달라붙는 방법이다. 상어전법은 한번 물면 끝까지 놓지 않는 수비법이다. 상대편에 잠시도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선수들이 교대로 달라붙는다. 이 전략은 ‘키예프의 기적’을 통해 효과가 입증됐다. 백 감독은 빙상계의 히딩크라고 해서 ‘백딩크’라는 애칭도 얻었다.

힘의 원천은 가족, 하키는 나의 인생

[人사이드 人터뷰] "언더독들의 평창 진격… '벌떼하키' 기대하세요"
백 감독은 2003년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NHL 하부 리그인 아메리칸아이스하키리그(AHL)의 그랜드래피즈 그리핀스에서 수석코치로 일했다. 그가 한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안을 받은 건 2014년이었다. 이때 그가 가장 걱정한 건 가족의 의견이었다. 백 감독은 “하키는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데 팀의 범위는 선수들의 가족, 연인, 친구까지 넓다”며 “나 역시 가족의 동의와 응원이 없었다면 감독직을 제대로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 감독의 부인과 아이들은 아버지를 응원했다. 특히 부인은 남편의 꿈을 잘 알고 있기에 더 적극적이었다.

백 감독은 “6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늘 ‘한국으로 돌아가 국가대표팀 감독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고 아내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며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국에서 지도자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 바람을 이룰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승리의 핵심 요소로 ‘팀의 단결’을 꼽는다. 이를 위해 ‘패밀리 데이’를 연다. 선수들의 가족, 연인과 함께 모여 스케이트도 타고 식사도 한다. 그는 “언제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가족의 응원을 당부한다”고 설명했다. 백 감독은 올해 몇 번이나 패밀리 데이를 했느냐는 질문에 “너무 많아 셀 수가 없다”고 답했다.

백 감독은 “한국 사람, 아시아인으로서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는 데 어려움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국적과 인종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문제는 내가 문제 삼을 때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백 감독은 “캐나다 토론토는 다양한 사람이 살기 때문에 인종 차별은 거의 없었다”며 “선수생활을 할 때 상대편 선수가 간혹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할 때도 있었지만 무시했다”고 말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귀화한 일곱 명의 외국 선수에 대해서도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한국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백 감독이 어린 시절 아이스하키를 접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캐나다는 아이스하키의 나라이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아이스하키를 배운다”며 “나 역시 학교에서 아이스하키를 접하고 푹 빠져 살았다. 하키 외에는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캐나다는 정식 등록된 선수만 56만 명이다. 한국은 2000명이다. 캐나다에서 프로 선수가 될 가능성은 0.025%에 불과하다. 그도 자신이 프로 선수가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백 감독은 “16세 때 프로 선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그는 노스쇼어 제너럴스라는 청소년 하키팀에서 뛰고 있었다. 이때 그를 눈여겨본 피츠버그 펭귄스 구단이 그를 스카우트해 NHL 진출까지 이뤄졌다.

백 감독에게 ‘하키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가’라고 묻자 “엄청나게 많았다”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경기에서 졌을 때, 훈련이 너무 힘들 때, 부상 당했을 때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상대 선수의 하키 스틱에 오른쪽 눈을 맞아 크게 다쳤다. 신경이 손상돼 오른쪽 눈으로는 사물을 뚜렷하게 보지 못한다. 그는 “그래도 경기할 때는 두 눈을 뜨고 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며 “많은 부상을 당하고 넘어져도 ‘여기서 그만둘 수 없어. 난 하키를 사랑하잖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다시 일어섰다”고 말했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면 그것이 진짜 금메달

백 감독은 바라던 꿈을 이뤘다. 최고 리그에서 두 차례나 우승했고 그의 유니폼은 아이스하키 명예의 전당에 걸려 있다. 지금은 그가 꿈꾸던 한국 대표팀 감독 자리에 있고, 한국을 세계 최정상팀 16개국이 겨루는 1부리그로 올려놨다. 내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한다. 각오는 남다르다. 그는 “선수들이 3년간 정말로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며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번 올림픽에서 그동안 연습한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승리도 좋고 메달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우리에겐 진정한 금메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 감독의 머릿속에는 올림픽 이후의 그림도 그려져 있다. 그는 “꿈은 항상 크게 가져야 한다. 그리고 꿈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며 “평창동계올림픽이 가장 큰 과제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바로 내년에 열리는 1부리그를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너무 바쁘다”고 웃으며 말했다.

아이스하키의 매력
"120㎞ 속도로 빙상 위 가르는 '퍽'…동계올림픽의 꽃이죠"


[人사이드 人터뷰] "언더독들의 평창 진격… '벌떼하키' 기대하세요"
한국 국민에게 ‘동계올림픽의 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피겨스케이팅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동계올림픽의 꽃은 아이스하키다. 경기 순서도 ‘하계올림픽의 꽃’ 마라톤처럼 폐막식 직전에 편성돼 있다. 결승전 티켓 가격도 최고 90만원으로 피겨스케이팅 결승(80만원)을 포함한 전 종목 중 가장 비싸다.

아이스하키는 빙판을 달리는 스피드와 함께 격렬한 몸싸움을 볼 수 있는 역동적인 경기다. 여섯 명씩으로 구성된 두 팀이 스틱으로 고무로 만든 퍽(puck)을 쳐서 상대팀 골대에 넣는다. 아이스하키 종주국은 캐나다다. 1924년 첫 동계올림픽인 샤모니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경기장은 길이 51~61m, 폭 26~30m의 아이스링크다. 20분씩 3회로 경기가 진행된다. 각 20분을 1피리어드라고 하며 피리어드 사이에 15분의 휴식 시간이 있다. 3피리어드로 승부가 나지 않으면 연장전을 한다. 연장전은 선취 득점하면 경기가 종료된다. 연장에서도 득점이 나지 않으면 승부샷으로 승패를 가린다.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팀 엔트리는 골리(골키퍼)를 포함해 남자 25명, 여자 23명이다. 링크에서 경기하는 선수 여섯 명은 골리 한 명, 수비수(디펜스) 두 명, 공격수(포워드) 세 명이다. 경기 도중 수시로 선수 교체가 가능하다. 체력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에 한 번 링크에 나선 선수가 경기하는 시간은 1분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경기 초반부터 종반까지 선수들의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아 끝까지 박진감이 넘친다는 장점이 있다. 선수들이 강하게 스틱을 휘두르면 퍽이 최고 시속 120㎞로 날아간다. 보호장구를 착용하지만 퍽에 맞아 부상하는 선수도 있다. 상대와의 공식적인 몸싸움인 ‘보디체크’도 허용된다. 이 때문에 가끔 폭력적인 장면도 연출된다. 규정을 벗어나는 행위에는 벌칙이 부여된다. 반칙의 정도에 따라 2·5·10분 동안 퇴장하거나 남은 시합 동안 계속 퇴장하는 벌칙도 부과할 수 있다.

선수 가운데 가슴에 ‘C’를 부착한 선수가 주장(캡틴)이다. ‘A’를 부착한 선수는 부주장(어시스턴트 캡틴)이다. 이들은 심판의 판정에 문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국제경기에서 심판은 주심 1~2명과 선심 2명 등 3~4명으로 구성된다. 백지선 한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감독은 아이스하키를 즐겁게 보는 방법에 대해 “간단하다. TV 앞에 앉아 경기를 보면 된다”며 “너무나 재미있는 경기이기에 보기만 하면 금방 빠져들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