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길라드 전 호주 총리(오른쪽)가 김도연 포스텍 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1일 ‘글로벌 인재포럼 2017’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길라드 전 총리는 “한국 사회가 고학력의 함정에 빠졌다”며 혁신적 사고를 길러주기 위한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줄리아 길라드 전 호주 총리(오른쪽)가 김도연 포스텍 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1일 ‘글로벌 인재포럼 2017’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길라드 전 총리는 “한국 사회가 고학력의 함정에 빠졌다”며 혁신적 사고를 길러주기 위한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국은 고학력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줄리아 길라드 전 호주 총리가 한국 사회에 던진 경고다. 그는 “한국의 학업성취도는 최고 수준이지만 기업가정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다”고 지적했다.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지식전달 중심의 교육 시스템이 이런 역설을 만들었다는 게 길라드 전 총리의 분석이다.

◆교육개혁이 중요한 이유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경제신문사 공동 주최로 1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7’에서 길라드 전 총리는 ‘글로벌 공동번영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주제로 첫 번째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호주는 6·25전쟁 참전국으로 북한의 핵 위협에 한국과 공동 대응할 것”이라며 강연의 포문을 열었다.

길라드 전 총리는 글로벌 기구인 ‘교육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 의장답게 교육개혁에 관한 혜안을 쏟아냈다. 그는 기술 혁신이 초래하는 불확실성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교육개혁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주는 대학 교육(해외 유학생 유치)이 3대 수출 품목에 들어갈 정도로 교육분야 혁신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엔 인재개발지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길라드 전 총리는 ‘학교 밖 학습’이 교육개혁의 핵심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에서 학교 교육에만 집중해선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고학력의 역설을 사례로 들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국가일수록 기업가정신 점수가 훨씬 낮다”는 것이다. 최근 조사된 글로벌 기업가정신지수(GEI) 순위에서 한국은 OECD 34개 회원국 중 22위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PISA 순위에서 늘 ‘톱5’ 안에 드는 것과 대조적이다. 길라드 전 총리는 “지식전달 중심의 100년 전 교육 방식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도자, SNS에 휘둘려선 안 돼

호주 최초의 여성 총리로서 ‘리더의 고충’도 털어놨다. 그는 “대중이 정보를 흡수하는 경로가 복잡하고 양도 엄청나다”며 “민주적인 방식으로 공론을 형성하는 일이 매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정보가 범람할수록 역설적으로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자신의 관점을 더욱 고수하고 있는 점도 어려움으로 꼽았다. 길라드 전 총리는 “리더가 개혁에 성공하려면 과거보다 더 대중을 향해 큰 소리로 소리쳐야 한다”고 했다.

길라드 전 총리는 스마트폰 시대에 지도자들이 쉽게 흥분하거나 여론에 휘둘리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여성 총리로서 겪은 성차별 비난을 예로 들며 “지도자든 일반인이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자신을 욕하는 끔찍한 댓글을 볼 때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며 “자신이 누구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가를 명확히 하고 이런 공격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교육 불평등이 공동 번영의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 섞인 진단도 내놨다. 길라드 전 총리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아동 14억 명 가운데 절반이 기초적인 문자해독과 수리능력을 갖추지 못할 것”이라며 “한국 인구의 다섯 배가 넘는 2억6000만 명의 아이들은 초등교육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몰려가는 것도 자식 교육 때문”이라며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만이 보건 문제, 무역 분쟁을 해결하고 반(反)이민·세계화 흐름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길라드 전 총리는 2013년 정치권에서 은퇴한 이후 최빈국의 아동 교육을 지원하는 다자기구인 ‘교육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 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내년 2월 열리는 총회에서 교육 평등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을 두 배(31억달러)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공여국인 한국의 지원도 요청했다. 대담을 진행한 김도연 포스텍 총장이 “기술 혁신으로 부와 권력이 일부에게 집중되며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하자 길라드 전 총리는“아직 세금과 사회복지 제도가 불평등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각국이 관련 정책을 공유하며 서로 배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