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 이중매매 배임죄 아냐"… 부동산과 다른 판단 '논란'
이중매매란 동산(動産)이나 부동산(不動産) 소유자가 그 물건을 A에게 매도하기로 계약하고 그 이후 계약내용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다시 B에게 이중으로 매도하고서 종국적으로 B로 하여금 그 물건의 소유권을 취득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이중매매가 가능한 것은 처음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시점과 최종적으로 소유권이 넘어가는 시점 사이에 상당한 시간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즉 고가 물건은 대개 매매계약 체결과 계약금 지급, 그 이후 중도금 지급, 잔금 지급, 그리고 잔금 지급과 거의 동시에 이뤄지는 소유권 이전이라는 절차에 의해 거래가 성립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한국은 소유권은 동산의 경우 점유 이전, 부동산의 경우 등기 이전이라는 물권(物權) 변동의 공시 방법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매수인에게 넘어간다. 이를 점유 또는 등기라는 형식을 중시하는 형식주의 내지 독일법계에서 취하는 제도라고 해서 독법주의(獨法主義)라고 한다.

즉 매수인이 설령 잔금까지 치러 실질적인 소유자가 됐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동산 점유 이전 또는 부동산 등기 이전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소유권은 여전히 매도인에게 있다. 따라서 매도인이 제1매수인인 A와의 약속을 깨고 B에게 다시 이중매매 계약을 체결하고서 B에게 동산 점유 이전 또는 부동산 소유권 이전을 하면 B는 정식 소유권자가 되는 반면에 A는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면서 계약금 및 중도금을 지급한 재산적 손해를 입게 된다. 이 경우 매도인은 재산상 손해를 입은 제1매수인 A에게 배임죄의 형사책임을 지는지가 문제다.

"동산 이중매매 배임죄 아냐"… 부동산과 다른 판단 '논란'
물론 매도인이 계약금만 받은 단계에서 이중매매한 경우에는 단순한 채무 불이행 문제만이 발생할 뿐이다. 계약금만 받은 단계에서는 우리 민법에 따르면 매도인은 계약금의 배액을 지급하고 1차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민법 제565조). 이 단계에서는 매매계약 목적물에 관한 사무는 아직 자기 사무에 불과하므로 이중매매를 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도인이 계약을 해지한 이후 2배의 계약금을 지급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도 단순한 민사상 채무 불이행으로 매수인은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중도금을 지급한 단계에서 이중매매한 매도인에게는 배임죄의 형사책임이 있을까. 2011년 1월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선고한 ‘2008도10479’ 판결은 이런 사례를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살펴보자. 피고인 갑은 자기 소유의 인쇄기를 A에게 양도하기로 하고 계약금 및 중도금을 수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채권자인 B에게 이를 다시 양도해 인쇄기 점유를 이전해줬다. 갑은 동산을 이중매매한 것이다.

동산 이중매매에 관한 판례 변경

그런데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는 부동산 이중매매의 경우 제1매수인에게 중도금을 받은 단계부터는 배임죄 성립을 긍정하고 있다. 중도금을 받았을 때는 매도인은 임의로 계약을 해지할 권리가 없을 뿐 아니라 매수인이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등기 절차에 협력할 의무가 있으므로 목적물에 관한 사무는 단순한 자기 사무라고 할 수 없고, 매수인의 소유권 취득을 위한 타인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이 단계에서의 이중매매는 배임죄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동산 이중매매에 대해서 종래의 대법원 판례는 부동산과 동일하게 배임죄 성립을 긍정했지만 위 판례는 다음과 같은 논지로 배임죄 성립을 부정하는 태도 변화를 취했다. 위 판례에서 대법원은 “매매의 목적물이 동산인 경우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계약에 정한 바에 따라 그 목적물인 동산을 인도함으로써 계약 이행을 완료하고, 그때 매수인은 매매 목적물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는 것이므로, 매도인에게 자기 사무인 동산 인도 채무 외에 별도로 매수인의 재산 보호 내지 관리 행위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동산 매매계약에서의 매도인은 매수인에 대해 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아니하므로, 매도인이 목적물을 매수인에게 인도하지 아니하고 이를 타인에게 처분했다 하더라도 형법상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매도인에겐 인도 채무만 있어”

판단하건대 동일한 이중매매임에도 불구하고 그 객체가 부동산 또는 동산인지에 따라 서로 다르게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중 매매자의 배임죄 성립 여부는 단순한 채권채무 관계인 계약금을 받은 단계와 완전한 소유권 이전이 이뤄진 단계 사이에 위치한 중도금 내지 잔금을 받은 단계에서의 매도인 지위가 제1매수인에 대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서의 지위인 것으로 해석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이런 해석 문제에서는 부동산과 동산 사이에 특별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즉 양자 모두 배임죄 성립을 부정하거나 양자 모두 배임죄 성립을 긍정해야 하는 것이다. 위 판례의 태도와 같이 부동산은 긍정, 동산은 부정하는 것으로 나눠야 할 것은 아니다.

현재 부동산 이중매매에 대해서는 배임죄 성립을 긍정하기 때문에 제1매수인은 이중매도인을 수사기관에 고소할 수 있고, 수사기관은 그의 신원을 확보해 수사한 결과를 고소인에게 통지하게 돼 있어 제1매수인의 피해 구제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위 판례와 같이 동산의 이중매매에 대해 배임죄 성립을 부정한다면 매도인이 이미 받은 계약금 및 중도금 등을 자진해서 돌려주지 않으면 제1매수인은 직접 민사소송을 제기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밖에 없다.

국가가 재산피해 구제에 도움 줘야

그런데 거액의 중도금 내지 잔금까지 받고 도망친 매도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으려면 어려운 신원 확보, 거액의 변호사 선임비용 및 소송비용, 오랜 소송기간 등 상당한 고통이 따른다. 이런 사후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이중매매를 가능케 하는 중도금 지급 단계가 계약 내용에서 제외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매매가액이 크고 거래기간이 긴 부동산 거래에서는 중도금 지급 단계가 일반화돼 있다. 그렇다면 부동산 이중매매의 경우 배임죄 성립을 긍정한 기존 판례 태도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는 것이 적어도 형사 정책적 관점에서는 더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거액의 재산 피해를 입은 제1매수인에게 국가 수사기관이 도움을 줘야지 개인이 알아서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라고 방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임죄 적용돼야 형사소송으로 피해구제에 도움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단순)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356조는 ‘업무상 임무에 위배하여’ 배임죄를 범하는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중 처벌하는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업무상 배임죄는 회사의 (대표)이사 등이 회사에 재산적 손해를 끼치는 배임행위에 적용하는 것임에 비해, 단순 배임죄는 거래하는 개인 상대방에게 재산적 손해를 끼치는 일반인의 배임행위에 적용한다.

그런데 거래 상대방에 대한 형법상 배임행위와 민법상 단순한 채무(계약) 불이행을 구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피해자에게는 양자의 구별이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의 의무 위배 행위가 형법상 배임행위로 해석될 때만 형사 문제로 고소해 국가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동권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