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못지않게 창작 표현방식 중요…대작 화가는 조수 아닌 독자적 작가"
"'조영남 방식', 미술계 일반적 관행으로 볼 수 없다"…징역 10개월에 집유 2년
'그림 대작' 조영남 1심 사기 유죄 징역형… "구매자 속여"
'그림 대작(代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72)씨가 1심에서 사기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조씨 그림을 대신 그린 사람은 단순한 조수가 아닌 작품에 독자적으로 참여한 작가로 봐야 한다며 조씨의 행위는 엄연한 사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강호 판사는 18일 조씨의 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함께 재판을 받은 조씨 매니저 장모씨에게도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우선 "작품의 아이디어나 소재의 독창성 못지않게 아이디어를 외부로 표출하는 창작 표현작업도 회화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씨의 그림 대작에 참여한 송모씨 등은 단순한 '조수'가 아닌 '독자적 작가'라고 판단했다.

이 판사는 "조씨는 송씨에게 대략적인 작업 방식만 지시하고, 작업 기간을 정하거나 세부적인 작업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며 "완성 단계에서 작품을 넘겨받으면 덧칠을 가미해 그림을 전시 판매했다"고 설명했다.

이 판사는 또 "송씨가 미술도구나 재료를 본인 선호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했고, 조씨는 비용만 냈을 뿐"이라며 "송씨는 조씨의 창작 활동을 손발처럼 돕는 데 그치는 조수가 아니라 오히려 작품에 독립적으로 참여한 작가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수 도움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미술계 관행이라는 조씨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판사는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의 작가들이 도제 목적으로 조수나 화가 지망생의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고 현대 미술에서도 이런 식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추세가 늘어나는 건 부인할 수 없다"고 우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판사는 "조씨는 송씨와 스승과 제자 관계가 아니고 해당 작품들이 도제 교육에서 제작된 것도 아니다"라고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씨가 제작 과정에서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하고 마무리 작업에 관여했다 해도 대부분의 창작 과정을 다른 사람이 한 작품을 온전히 자신의 창작물로 판매하는 건 미술계의 일반적 관행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판사는 조씨의 행위가 결국 그림 구매자들을 속인 것으로 판단했다.

이 판사는 "회화에서는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한 작가가 창작까지 전적으로 관여했는지가 구매 판단이나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송씨 등이 그림 표현작업을 주로 한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판매한 건 피해자들을 속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행위가 국내 미술계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미술 시장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이 판사는 부연했다.

또 송씨 등을 단순 조수로 평가하며 노동 가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송씨로 대변되는 수많은 무명작가에게 상처와 자괴감을 안겼다고도 지적했다.

이 판사는 다만 "조씨가 미술계의 일반 관행이나 현대 미술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경솔함에서 범행이 시작됐고 일부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조씨는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 중순까지 대작 화가 송씨 등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뒤 가벼운 덧칠 작업만 거쳐 17명에게 총 21점을 팔아 1억5천300여만원을 챙긴 혐의(사기)로 지난해 6월 불구속 기소됐다.

매니저 장씨도 대작 범행에 가담해 3명에게 대작 그림 5점을 팔아 2천680여만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조씨는 선고 결과에 대한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게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법정을 떠났다.

조씨는 조만간 항소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