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6. 6. 23. 선고 2015다231511 판결 : 유언무효확인 등>

Ⅰ. 사실관계

망 A(이하 ‘망인’이라고 한다)는 1937. 12. 3.생으로 고혈압 및 당뇨 등을 앓다가 2011. 12. 12. 삼성창원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이후로 병원생활을 계속하던 중 2012. 11. 9. 사망하였다. 망인의 상속인으로 그의 처인 원고 B, 자녀인 원고 C, D, E 및 피고가 있다.

망인이 사망하기 전인 2011. 12. 20. 공증인가 S법무법인에서 ‘망인은 별지 목록 기재 각 부동산을 장남인 피고에게 유증한다. 단, 피고는 상속등기 후 10년 이내에 차남인 원고 C 및 삼남인 원고 D에게 각 3000만 원, 딸인 원고 E에게 1000만 원을 지급한다. 처인 원고 B에게 B의 사망시까지 매월 말일에 60만 원씩 지급한다.’는 내용의 유언공정증서(이하 ‘이 사건 공정증서’라고 한다)가 작성되었다.

위 공정증서에 의하면, 창원시 소재 공증인가 S법무법인의 사무소에서 망인이 증인 X, Y의 참여하에 위 사무소의 공증담당변호사인 K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수하였고, 공증인 K가 이를 필기낭독하였으며, 위 증인들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서명날인하고, 망인은 그 정확함을 승인하였지만 자필서명이 어려워 공증인 K와 증인들이 그 사유를 부기하고 공증인이 대신 서명, 날인한 것으로 되어 있다.

Ⅱ. 소송경과

원고들은, 유언자의 서명 또는 기명날인이 없었으므로 민법 제1068조에 규정된 방식에 위반하였고, 또한 망인의 진정한 의사에 기한 유언이라고 볼 수도 없어 이 사건 유언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1심인 창원지방법원에서는 “이 사건 공정증서의 유언자란에 망인이 직접 서명이나 기명날인을 하지 않고 공증인 K가 망인을 대신하여 서명과 날인을 하였는데, 당시 망인은 팔에 링거주사를 맞고 있었을 뿐 침대에 양손이 결박된 상태로 있지 않아 의식이 명료하였다면 굳이 공증인에게 서명과 날인을 대신하도록 할 필요가 없었던 점 등 위 공정증서 작성 경위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의 취지가 망인의 진정한 의사에 기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 이 사건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공증인 K가 망인을 대신하여 서명과 날인을 하였으므로 민법 제1068조에서 요구하는 ‘유언자가 서명 또는 기명날인할 것’이라는 요건도 갖추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이 사건 유언은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의 방식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Ⅲ. 대법원 판결요지

그러나 항소심인 부산고등법원과 대법원의 판단은 이와 달랐다. 대법원의 판시요지는 다음과 같다. “유언자의 기명날인은 유언자의 의사에 따라 기명날인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 반드시 유언자 자신이 할 필요는 없다. 망인은 이 사건 유언 당시 오른 팔에 주사바늘을 꼽고 있었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 관계로 일어나 이 사건 공정증서에 서명을 할 수 없어, 망인의 의사에 따라 공증인이 그 사유를 적고 망인을 대신하여 이름을 쓰고, 망인의 도장을 날인한 사실이 인정되는바, 이 사건 공정증서는 민법 제1068조에 규정한 ‘유언자의 기명날인’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Ⅳ. 해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증인 2인이 참여한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수하고 공증인이 이를 필기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여야 한다(민법 제1068조). 이 때 유언자의 서명 또는 기명날인은 유언자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 예컨대 증인이나 공증인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인지 문제된다. 1심은 유언자가 직접 자기 이름을 적고 날인해야만 유효하다고 본 반면, 항소심과 대법원은 유언자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진 경우에는 설사 유언자가 직접 이름을 적고 날인을 하지 않았어도 유효하다고 보았다.

서명(署名)이란 자기 고유의 필체로 자기의 이름을 제3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쓰는 것을 말하고, 기명(記名)이란 단순히 이름을 적는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서명은 반드시 본인이 적어야 하지만, 기명은 다른 사람이 대리해서 적거나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기명의 경우에는 본인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날인이 함께 요구된다. 이 사건의 경우 공증인이 유언자를 대신하여 유언자의 이름을 기재했더라도 유언자의 날인이 있으므로 비록 ‘서명’에는 해당되지 않을지라도 ‘기명날인’의 요건은 충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유언자의 기명날인은 유언자의 의사에 따라 기명날인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 반드시 유언자 자신이 할 필요는 없다”고 판시하면서 이 사건 공정증서는 ‘유언자의 기명날인’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판결한 것이다.

참고로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에서는 서명 또는 기명날인을 요구하지만,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서는 성명의 자서와 날인을 요구한다(제1066조). 성명의 자서란 스스로 이름을 적는다는 의미로서 서명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Ⅴ. 비교판례

이 사건과 비교하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판례가 있다. 즉 유언자가 사지마비로 인해 직접 유언공정증서에 서명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증인 중 한 사람이 유언자의 손에 필기구를 쥐어주고 그 손을 잡고 같이 서명을 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유언 당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던 유언자의 의사전달능력은 있었으나 수술에 의하여 기관지가 절개된 상태였기 때문에 말을 하기 위해서는 절개 부분에 삽입된 의료기구를 제거하고 절개된 부분을 막아야만 쉰 목소리로 발음을 할 수 있었을 따름이고, 또 유언과 동시에 유언의 취지와 다소 모순되게 액면금 2억 원의 약속어음을 소송수계신청인에게 발행ㆍ교부하였다면, 과연 공정증서에 기재된 내용과 같이 제대로 된 유언의 구수가 있었는지에 관해서 강력한 의심이 들뿐만 아니라, 가사 유언의 구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 다른 사람이 사지가 마비된 유언자의 손을 잡고 공정증서 말미용지에 서명과 날인을 하게 한 행위만으로는 유언자의 서명날인이 있다고 할 수도 없으므로, 위 요건 중 '유언자가 서명 또는 기명날인할 것'이라는 요건도 갖추지 못하였다 할 것이다.”(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0다21802 판결).

다른 사람이 대신 유언자의 이름을 적고 날인한 것은 유효하다고 보면서도 다른 사람이 유언자의 손을 잡고 서명과 날인을 하게 하는 것은 무효라고 보는 것은 다소 모순된 느낌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이 유언자를 대신해서 이름을 적는 것은 분명히 기명에 해당하지만, 다른 사람이 유언자의 손을 잡고 서명을 하게 하는 것은 기명이나 서명 어느 것으로 보기에도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서명’과 ‘기명’에 관한 개념의 문제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그러한 행위가 유언자의 의사에 따른 것이었는지 여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유언자의 의사임이 분명한 경우에는 설사 다른 사람이 기명날인을 하던, 유언자가 서명, 날인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도와주던 유효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위 비교 판례(2000다21802)에서 대법원이 유언장을 무효라고 본 것은, 유언 당시 유언자의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여 그러한 유언이 유언자의 진의에 의한 것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라 생각된다.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법학박사 김상훈

학력
1.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2. 법학석사(고려대학교) : 민법(친족상속법) 전공
3. 법학박사(고려대학교) : 민법(친족상속법) 전공
4.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Law School 졸업(Master of Laws)
5. 서울대학교 금융법무과정 제6기 수료

경력
1. 제43회 사법시험 합격
2. 사법연수원 33기 수료
3.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친족상속법, 신탁법 담당
4. 서울지방변호사회 증권금융연수원 강사 : 신탁법 담당
5. 법무부 민법(상속편) 개정위원회 위원
6. 대한변호사협회 성년후견연구위원회 위원
7. 금융투자협회 신탁포럼 구성원
8. 한국가족법학회 이사
9. 한국성년후견학회 이사
10. 상속신탁연구회 부회장
11. 법무법인(유한) 바른 구성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