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차, 잔업중단 > 기아자동차 직원들이 25일 오후 경기 광명시 소하리 공장에서 근무 교대를 하고 있다. 기아차는 이날부터 잔업을 중단하고 특별근무를 최소화하는 사실상의 ‘감산’에 들어갔다.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지난달 말 통상임금 1심 소송 패소에 따른 인건비 상승 등 각종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 기아차, 잔업중단 > 기아자동차 직원들이 25일 오후 경기 광명시 소하리 공장에서 근무 교대를 하고 있다. 기아차는 이날부터 잔업을 중단하고 특별근무를 최소화하는 사실상의 ‘감산’에 들어갔다.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지난달 말 통상임금 1심 소송 패소에 따른 인건비 상승 등 각종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쓰나미에 이어 사내하청 직접고용 압박에 이른바 ‘양대 지침’ 폐기까지….’

문재인 정부 들어 기업들이 연일 맞닥뜨리고 있는 노동비용 청구서들이다. 공통점은 하나같이 정책이나 제도 결정 과정에서 일자리 ‘공급자(기업)’는 없고, ‘수요자(근로자)’에 대한 배려만 녹아 있다는 것이다. 경제계에선 “정작 돈을 내야 할 당사자들(기업)에게 한마디 의견도 묻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며 “잇따른 친(親)노동 정책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란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완전히 무너진 노사균형

이른바 ‘양대 지침’은 지난해 1월 공정인사, 취업규칙 두 가지 지침을 통해 저(低)성과자 해고를 쉽게 하고, 취업 등에서 노동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 노동조합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범위를 넓히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정부가 25일 공식 폐기를 선언하면서 2년도 안돼 ‘없던 일’이 됐다.
"임금 올려놓고, 성과 나빠도 해고 못하면 무슨 수로 일자리 만드나"
오락가락 정책으로 산업 현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정부의 기존 가이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인사 및 취업 지침 등을 손본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은 “정책 일관성 부족으로 산업 현장에 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며 “당장 관련 가이드라인을 바꾼 기업들의 노조가 다시 무효화를 주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양대 지침 폐기로 기업의 고용 유연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10대그룹 노무담당 임원은 “저성과 근로자에 대한 최소한의 관리장치가 사라지면서 앞으로 노조가 기업의 경영 및 인사, 고용 과정에 더 깊숙이 개입하려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임금 올려놓고, 성과 나빠도 해고 못하면 무슨 수로 일자리 만드나"
기업들은 양대 지침이 폐기되면 당분간 임금피크제 도입 및 저성과자 해고 등이 쉽지 않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양대 지침이 적용되면 근로자 동의가 없어도 합리성만 있으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동의 없이 도입하면 소송을 당할 우려가 커졌다. 저성과자 해고 역시 새로운 기준이 마련될 때까지 상당 기간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런 이유로 정부 지침이 바뀌더라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과연봉제 도입만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양대 지침 중 ‘취업규칙 지침’은 사실상 ‘호봉제 폐지,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기반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경총 관계자는 “정부 지침과는 별도로 호봉제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청년 일자리를 늘리자는 취지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방으로 치닫는 정책

경제계는 갑작스런 양대 지침 폐기로 인한 혼란도 걱정이지만, 정부의 잇따른 밀어붙이기식 친노동 정책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노동정책의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마련할 때마다 노동계의 일방적인 목소리만 담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최근 파리바게뜨와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등이 10여 년간 유지해 온 하청업체 인력 활용에 대해 불법 파견 ‘딱지’를 붙인 게 대표적이다.

제조업에서 주로 발생하던 불법 파견 논란이 서비스업과 프랜차이즈 등 산업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산업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뚜레쥬르를 비롯한 삼성전자서비스, 현대자동차 등도 비슷한 불법 파견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계에선 “정부가 대기업에 하청업체 직원들에 대한 직접 고용을 압박하는 것은 결국 일자리 책임을 떠넘기는 꼴”이란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3년 내 최저임금 시급 1만원으로 인상 △근로시간 단축(주당 최대 68시간→52시간) 등 이른바 친노동 정책 ‘3종세트’도 마찬가지다. 고비용 생산구조로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많지만, 정부가 기업의 입장을 정책에 담으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지난달 31일 기아자동차가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패소하면서 산업현장 전체가 조(兆) 단위 소송에 내몰린 것도 큰 부담이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정부가 고용의 주체인 기업을 완전히 제쳐놓고 독주를 하면 결과적으로 정책의 수용성만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며 “일자리가 쉽게 늘어날 것 같지 않다”고 우려했다.

장창민/좌동욱/강현우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