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의 조선 왕릉들] 장희빈 묘와 숙종·인현왕후 모신 명릉 한곳에
경기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은 조선왕릉 중 경기 구리시의 동구릉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제198호로 지정됐다.

서오릉은 ‘도성의 서쪽에 있는 다섯 기의 왕릉’이란 뜻이다. 성종의 친부인 의경세자(덕종)와 인수대비(소혜왕후)의 경릉이 먼저 조성됐고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창릉, 19대 숙종의 비 인경왕후의 익릉, 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제2계비 인원왕후의 명릉, 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홍릉이 차례로 들어섰다. 명종의 첫째 아들 순회세자의 순창원, 영조의 후궁이자 장조의황제(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수경원, 숙종의 후궁인 장희빈(옥산부대빈)의 대빈묘도 있다.

경릉은 오른쪽 언덕(동쪽)에 덕종, 왼쪽 언덕(서쪽)에 소혜왕후를 모셨다. 왼쪽에 왕, 오른쪽에 왕비의 능이 들어서는 왕릉과 반대다. 덕종은 왕세자 신분으로, 소혜왕후는 대왕대비 신분이어서 이에 맞게 능을 조성한 것이란 해석이다.

명릉(사진)은 역사적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숙종과 인현왕후를 모신 곳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숙종의 능이 이곳으로 정해진 것과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숙종이 어느 날 평상복 차림으로 민심을 살피기 위해 궁궐을 벗어나 냇가를 지나가고 있을 때 울고 있는 한 젊은이를 보고 연유를 물었다. 젊은이는 갈처사라는 지관이 이곳에 무덤을 쓰면 좋다고 해서 땅을 파는데, 아무리 파도 물이 고이니 어쩔 줄 모르겠다고 답했다. 숙종은 젊은이를 불쌍히 여기고는 그에게 관청에서 쌀 300석을 받을 수 있도록 적은 서신을 쥐여줬다. 그리고는 지관을 찾아가 청년의 일을 따져 물었다. 지관은 “모르면 잠자코 계시오. 저 땅은 무덤자리로 들어가기 전에 쌀 300석을 받고 명당자리로 들어가는 자리”라며 숙종에게 핀잔을 줬다. 신통함에 놀란 숙종은 갈처사에게 자신의 묏자리를 부탁했다. 지금의 명릉 자리가 바로 갈처사가 택한 입지라고 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