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위한 '지식생산자' 로 나선 전 경제사령탑
국정 주역이었던 전직 경제사령탑들이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한 밑거름을 뿌리는 ‘지식생산자’로 나서고 있다. 싱크탱크를 만들고 1인 연구소를 차리는 ‘국가 멘토’들의 새로운 풍속도다.

11일 서울대에 따르면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와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서울대 초빙교수로 임용됐다. 탄핵 정국 속에서도 국정을 수습한 양대 경제사령탑이 모두 서울대에 둥지를 튼 셈이다. 서울대 초빙교수는 별도의 보수가 없는 무보수 명예직이다. 유 전 부총리는 행정대학원에서, 주 전 장관은 경영대에서 길게는 3년간 머물며 강의와 연구에 나설 계획이다.

전임 경제사령탑들은 사회 곳곳에서 지식생산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에 기여한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71)은 2011년 퇴임 후 거액의 연봉을 받는 로펌 고문직을 마다하고 1인 싱크탱크인 ‘윤(尹)경제연구소’를 설립했다. 이후 정권과 기관을 가리지 않고 현안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윤 전 장관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복지와 성장의 접점을 찾기 위해 연구소를 차렸다”며 “특정 단체에 속하지 않고 자유로운 입장이어야 현안에 대해 온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연구소 설립 배경”이라고 말했다.

박재완 전 기재부 장관(62)은 성균관대에서 후학 양성에 열심이다. 또 퇴임 1년 뒤인 2014년부터 민간 싱크탱크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을 맡아 지금까지 투잡을 뛰고 있다. 박 전 장관은 “공직은 떠났지만 한국을 선진 사회로 이행시키기 위한 각종 정책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주도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73)는 지난해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 설립에 참여했다. 통일한국, 신기술혁명에 대비한 한국만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영원한 대책반장인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법무법인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로 변신했다. 인문, 사회, 경제, 역사 분야의 연구와 출판 지원사업을 수행하고 관심 분야인 상고사 연구에도 매진 중이다.

경제 관료들의 지식산업 투신을 계기로 퇴직 공직자들의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직시절의 인맥이나 영향력으로 이익단체 브로커로 활동하는 식의 전관예우는 막되, 이들의 능력은 살리는 규제의 정교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경원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금은 전관예우를 차단하기 위해 재취업을 엄격히 제한하는 포괄적 규제를 택하고 있다”며 “부패를 막는다는 취지에만 매몰되다 보니 역량이 사장되는 단점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재 공직자는 퇴직 후 3년간(2015년 3월30일 이전 퇴직자는 2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된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에 취업할 수 없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