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들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구직자를 회사로 초청하는 설명회를 열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 8일 충남 당진제철소로 취업준비생을 초청해 회사 투어와 함께 직무소개를 진행했다. 현대글로비스도 10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본사에서 잡페어를 열었다. 각 사 제공
최근 기업들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구직자를 회사로 초청하는 설명회를 열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 8일 충남 당진제철소로 취업준비생을 초청해 회사 투어와 함께 직무소개를 진행했다. 현대글로비스도 10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본사에서 잡페어를 열었다. 각 사 제공
올 하반기 대졸 공채는 자기소개서가 당락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다. 출신 지역, 학교, 성적 등을 모두 가린 채 진행하는 블라인드 채용 확산으로 지원자의 경험과 가치관, 직무역량 비중이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제한된 여건 가운데 최적의 인재를 고르기 위해 자소서를 토대로 하는 입체적 면접을 준비하고 있다. 자소서에 담아야 할 내용도 더욱 실전적으로 변하고 있다. 해당 기업들이 당면하고 있는 고민과 과제를 묻는 사례가 눈에 많이 띄었다.

화려한 문장보다는 실전적 역량

하반기 공채기업 40곳 자소서 문항 봤더니
디지털 금융을 선언한 신한은행은 이번 채용에서 ‘은행에서 빨리 인공지능(AI)을 도입해야 할 영역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또 국민은행은 자소서에 은행원이 갖춰야 할 디지털 역량이 어떤 것인지를 쓰도록 했다. 핀테크(금융기술), 인터넷은행 등의 출범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시중은행들이 지원자에게 미래 금융의 모습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하고 있다.

올해 기업들의 또 다른 채용 트렌드는 세분화다. 마케팅, 인사, 재무, 디지털, 빅데이터 등 분야별로 ‘적합한 인재(right people)’를 뽑는 경우가 늘었다. 과거 일괄적으로 뽑아 부서에 배치하는 그물망 채용이 아니라 직무별로 원하는 인재를 뽑는 ‘낚시형 채용’을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원하는 기업이 속한 업종의 특성과 직무의 성격을 폭넓게 이해하지 못하면 면접 시 제대로 대응하기가 어렵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자소서를 평가할 때도 유려한 문장보다는 직무와 회사에 대한 이해도를 우선적으로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부문의 인력을 뽑고 있는 SK텔레콤은 ‘데이터 모델링, 데이터 엔지니어링 관련 경험을 쓰라’ 또는 ‘IoT사업 경험 중 위기극복 사례는 무엇인지’ 등을 자소서에 쓰도록 했다. 우리은행은 로보어드바이저, AI 음성인식, 외국어 대화번역 등 서비스 중인 디지털금융을 소개하면서 ‘창의적 사고와 남보다 한발 앞선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가 무엇인지’를 묻기도 했다. 현대카드의 자소서 질문은 더 세밀했다. 오픈소스 개발과 데이터 사이언스 콘퍼런스 참가 경험을 물은 뒤에 ‘스타트업을 한다면 어떤 서비스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한국예탁결제원은 지원자들의 직무 이해도를 미리 검증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라’는 문제를 냈다.

스토리텔링을 담아라

기업들은 당면한 고민을 자소서 항목을 통해 구직자에게 물었다. 우리카드는 ‘최신 금융 트렌드를 보면서 2018년 카드업계 가장 큰 이슈를 예상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말해 달라’고 질문했다. 한화큐셀은 ‘태양광 시장을 선도하고 업계 1위를 지속하기 위해 회사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지원자의 견해를 밝혀달라’고 했다. 패션기업 LF는 ‘회사의 브랜드·비즈니스에 접목시킬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과 트렌드 아이디어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지원자들의 상상력과 창의성, 스토리텔링 능력을 테스트하는 기업도 많았다. 기업들이 실전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문제해결능력’의 잠재력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광고대행사 이노션월드와이드는 ‘초등학교 6학년 조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직무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질문했다. 기아자동차는 기아의 인재상인 ‘창조, 혁신, 탐험, 행동’에서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선택해 경험적 사례로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GS리테일은 ‘정직함에 대한 지원자의 경험과 상황대처 사례가 무엇이었는지’를 물었고, BGF리테일은 ‘대립되는 입장을 조정해본 경험 사례’를 궁금해했다. LS전선은 지원자가 지닌 강점을 ‘해시태그로 표현해 볼 것’을 요구했다. 가령 #OO자격증보유자 #OO네이티브스피커 #OO경험을 보유한 전문가 등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 역량에 대한 세밀한 평가도 중요

블라인드 채용 확산과 관계없이 자소서 항목에서 여전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질문은 △지원동기 △성장과정 △직무역량 △문제해결 △입사후 포부 등이었다. 삼성전자는 ‘지원 이유와 입사 후 이루고 싶은 꿈’을, 국민은행은 ‘직업의 의미와 직업선택 기준’을, 포스코는 ‘회사 선택의 기준’을 각각 물었다. 효성은 ‘지원동기와 함께 지원 사업부의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함께 질문했다.

직무역량과 관련해서 한화방산은 구체적인 수치까지 요구했다. ‘전체 총이수 학점·전공 총이수 학점·전공과목 전체평점을 기입하고 지원 직무에 가장 도움되는 두 과목에 대해 과목명, 평점, 도움이 되는 이유를 기술하라’는 항목을 뒀다. 현대건설은 △창의성 △소통 △협력 △도전정신 △글로벌 △조직적응 등 여섯 가지 역량에 대해 지원자의 역량 보유도를 점수화해 묻기도 했다. 현대제철도 현대차그룹 핵심가치의 실천 사례를 제시하라고 했다.

주어진 목표 달성을 위한 성공·실패 경험도 단골 항목이다. KT LG디스플레이 LG상사 등은 ‘인생에서 열정과 끈기로 성공·실패한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현대글로비스는 ‘살면서 가장 소속감을 느꼈던 조직과 협업 경험을 써라’, 롯데는 ‘입사후 10년의 시나리오를 짜보라’고 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