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허락이 있다면 성년후견인이 피후견인 주주권을 대신 행사할 수 있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가정법원 가사21단독 재판부는 성년후견을 받는 A씨의 가족이 낸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 범위 결정’ 사건에서 이 같은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서울가정법원이 선임한 법무법인 B의 후견을 받고 있는 A씨는 주식회사 3곳의 최대 주주다. 성년후견인인 B가 A씨 소유 회사의 대표이사를 교체하기 위해 주총을 소집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A씨의 아들 등은 B가 대표이사를 교체하기 위해선 법원 허가가 필요하다는 권한 범위결정 심판을 제기해 이를 방지하려 했다.

재판부는 “피성년후견인 A씨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대표이사·이사·감사의 변경에 관한 사항은 A씨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포함한 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항”이라며 “성년후견인의 대리권 행사에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단 재판부는 A씨 재산을 두고 가족들이 분쟁을 벌여온 점, A씨가 대주주인 회사들의 대표이사 임기가 만료된 지 1년 넘게 지난 점 등을 고려해 성년후견인인 B가 ‘A씨가 주식을 보유한 회사의 대표이사·감사·이사를 변경하기 위해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행위’를 대리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아울러 B가 A씨가 대주주인 회사의 주주총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허락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주주인 피성년후견인의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성년후견인이 주주권을 행사할 경우 중요한 사항은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최초로 명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도 비슷한 분쟁에 휘말려 있어 이번 법원 결정이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 성년후견인

질병, 노령 등으로 정신적 제약을 가진 인물을 대신해 법정대리인 역할 등을 하는 사람이나 법인을 뜻한다. 가정법원의 직권으로 정해지며 피성년후견인의 의사 및 건강, 생활관계, 재산상황 등을 고려해 선임된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