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변호사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전관예우와 변호사의 비리를 구조적으로 막겠다는 취지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불고 있는 사법개혁 움직임에 편승해 힘을 얻고 있지만 일각에선 위헌 주장도 제기된다. 9월 정기 국회가 열리고 논의가 시작되면 논쟁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Law&Biz] 사법개혁 바람 타고… 판·검사 '변호사 개업 제한법' 봇물
◆법조계 고위직 변호사 개업 제한

[Law&Biz] 사법개혁 바람 타고… 판·검사 '변호사 개업 제한법' 봇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대법관, 헌법재판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등 법조계 고위공직자가 퇴임 후 2년간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대법관은 퇴직 후 대법원 사건 수임을 영구적으로 금지하는 내용도 담았다. 대신 해당 법조인이 변호사 개업 제한 기간에 사법연수원, 법무연수원, 법학전문대학원 등에서 의무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조항을 넣었다. 또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 지방검찰청 검사장 이상 공직자가 퇴직하면 근무 기관의 사건을 2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했다. 지금은 제한 기간이 1년이다.

정치권이 법조계 고위공직자의 변호사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고질적인 전관예우 문제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부장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가 불법으로 100억원 상당의 수임을 올리다 적발돼 국민의 공분을 샀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다른 변호사가 쓴 대법원 상고 이유서에 전직 대법관이 도장만 찍어줘도 3000만원 이상 줘야 한다는 게 이 바닥의 상식”이라고 말했다. 대법관 출신으로 대형 법무법인에 소속된 A변호사는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을 2014년 124건, 2015년 108건 등 매년 100건 이상 수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형성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조계 공직자들이 퇴직한 뒤 고가의 수임료를 받고 사건을 싹쓸이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일정 기간 변호사 개업을 제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로펌 관계자는 “법조 고위직 출신 전관예우 효과는 퇴직 후 2년 정도여서 로펌에서도 취업 제한이 강화되면 영입하려는 요인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위헌 소지 가능성”

법조계 일각에서는 변호사 활동 제한이 위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공익적 목적이 있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1989년 헌법재판소는 직전 2년간 근무한 지역에서 3년간 개업을 금지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조항이 직업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위헌 여부와 별개로 대안 없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막는 것은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퇴직한 고위직 법조인의 변호사 활동을 제한하는 기간에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보장해주면서 공공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퇴직 고위 판사를 대상으로 ‘시니어 재판관(senior judge)’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운영 중인 시니어 재판관은 일정 자격을 갖춘 판사가 퇴직 후 재판 보조업무, 사법부 관련 조언, 봉사활동 등을 하면서 현직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 제도다. 미국의 시니어 재판관 수는 전체 연방판사의 30% 정도다.

◆변호사 입지 좁히는 법안도 수두룩

박 의원의 개정안 외에도 △공직 출신 변호사의 수임 제한 기간 연장(송영길·박광온 의원) △선임계를 안 내고 변론 시 처벌 강화(권은희 의원) △변호사 보수 제한(김동철 의원) 등 변호사 입지를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이 계류 중이다.

정치권은 변호사 비리 근절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은 공무원 재직 중 징계로 퇴직할 시 정직 기간만큼 변호사 개업을 금지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는 퇴직하면 바로 변호사 개업이 가능하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변호사법 개정안에는 변호사가 직무와 관련해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되면 변호사 등록이 영구 취소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밖에 주승용 국민의당 의원은 변호사가 사건 수임 시 판검사와의 지연, 학연 등 연고를 의뢰인에게 선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