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보험사 직원의 무단 촬영 논란 (대법원 2006년 10월13일 선고, 2004다16280 판결)

2000년 보험사 무단 촬영
추돌 사고 당한 A씨 보험금 소송
보험사, A씨 일상 촬영해 "장애 심하지 않다" 증거 제출
A씨 "몰래 촬영은 불법" 위자료 청구

대법, 몰래 촬영은 불법이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촬영도 초상권 침해 '불법행위' 판결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휴대폰만 있어도 타인의 사생활을 영상으로 찍거나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다. 폐쇄회로TV(CCTV)는 물론 자동차 블랙박스도 널려 있다. 그런데 몰래 촬영하는 경우 대부분 초상권(肖像權)이라는 헌법상 인격권을 침해하게 된다. 이는 사생활 침해로 불법행위인 것이 보통이다. 침해행위가 공개된 장소에서 민·형사소송의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이뤄졌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몰래 촬영이 언제나 위법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다룬 ‘대법원 2004다16280 판결’에 대한 학계와 법조계의 반응은 크게 나뉘었다. 위 사건 원고는 A와 그 가족이다. A는 2000년 가족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급히 끼어든 차를 피해 급제동하는 바람에 그의 승용차는 뒤따르던 봉고트럭에 받혔고 가족이 다쳤다.

보험사가 제시한 합의금에 만족하지 못한 A 등은 보험금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보험사 직원 2명은 법원에 재감정을 신청하면서 그 필요성을 뒷받침할 자료로, 8일 동안 원고들의 주택과 직장 부근 등에서 그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사진 54장을 몰래 찍어 법원에 냈다. 재감정 결과, 원고 중 1인의 한시장애(치료 후 영구적이 아니라 한시적으로 나타나는 장애)는 1차감정 시의 85% 정도로 바로잡혔다. 원고와 피고가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을 받아들여 보험금지급소송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뒤이어 A 등은 사진촬영이 불법행위라며 보험사와 직원을 상대로 5000만원의 위자료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교통상해 장애상태 몰래 촬영

김선정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김선정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제1심법원은 무단촬영 그 자체가 불법행위라며 총 5000만원의 위자료를 주라고 판결했다. 이와 달리 제2심법원은 몰래 지켜보거나 차를 따라가며 찍었지만 공개장소에서 찍었고 공정한 민사재판권 실현을 위한 업무상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없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 판결이 잘못됐다며 다시 재판하도록 사건을 원심법원에 되돌려 보냈다.

대법원은 초상권 침해는 헌법이 보장한 인격권(제10조)을 침해하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제17조)를 침해하는 불법행위(민법 제751조 제1항)라고 봤다. 특정 목적을 갖고 의도적, 계속적으로 주시하고 미행하면서 사진을 찍은 것은 비록 공개된 장소에서 민사소송에 이길 증거를 수집할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불법이다. 대법원은 이 대원칙을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대법원은 몰래 촬영이라는 불법행위가 위법성을 벗는 경우, 즉 몰래 촬영이 허용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고 밝히고 그 기준을 제시했다. 그중에는 보험사 직원이 몰래 촬영이라는 불법행위를 통해 달성하려는 이익으로, 과다한 보험금 청구를 방어해 얻는 보험사의 이익과 함께 부당한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함으로써 다른 이의 보험료 인상 요인을 줄일 수 있다는 보험가입자들의 ‘공동이익’을 들고 있다.

몰래 촬영도 예외적으로 허용

대법원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여러 사정을 종합해 이익의 무게를 달아 보고 그 침해행위의 위법성을 판단해야 한다면서 당사자의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동이익을 예로 들었다. 따라서 정당행위, 정당방위, 급히 반대증거를 제출해 상당한 불이익을 피해야 할 긴급피난 등과 같이 유형화된 조각사유(위법성이 없다고 평가되는 근거)가 있을 필요는 없다. 다만 위법성을 판단할 때도 인격권의 본질적 내용의 보호, 침해의 필요성과 효과성, 침해내용의 최소성, 침해방법이나 수단의 상당성 등도 고려된다. 대법원은 위 사건의 경우 불법성을 벗어날 사안이 아니라고 봤다. 그리고 불법행위인 침해행위가 위법하지 않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라고 했다. 대법원 판결은 몰래 촬영의 불법행위성과 이를 벗어날 기준을 조목조목 제시한 데 의의가 있다.

그런데 위 판결은 이 사건 보험사가 사진촬영이 아니더라도 소송절차 내에서 감정 결과에 불복할 수 있으므로 침해의 보충성(다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 최후적, 보충적으로만 적용)을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과연 그럴까.

장애상태를 다툴 방법이 없다면…

이 점과 관련해 2017년 4월12일 대구고등법원은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렸다(2016나22753, 2016나22706 판결). 이는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보험사가 보험금 3000만원을 지급하자 피해자가 대학병원에 20여 일을 입원해 받아 온 신체감정서를 근거로 4억6000만원을 더 달라고 다툰 사건이다. 피해자는 장해지급률(장해분류표에서 질병이나 상해에 대해 치유 후 남아있는 영구적인 장해에 의한 신체의 노동력 상실정도를 %로 나타낸 것) 115%를 주장해 보험사가 계산한 45%와는 큰 차이가 났다. 보험사 직원은 피해자의 일상생활을 1시간20여 분 동안 여러 차례 나눠 촬영해 총 21분 분량의 동영상을 법원에 냈다. 여기에는 피해자가 양손, 팔꿈치, 어깨를 모두 사용하며 시장을 편하게 걷는 모습 등 공공장소에서의 일상적인 모습이 담겨 있었다. 법원은 이 동영상이 피해자가 자신이 촬영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찍힌 것이어서 오히려 대학병원 기록보다 더 진실한 것으로 봤다. 이 사건 피해자는 1500만원만 더 받고 상고를 포기했다.

2006년 판결은 증거가 위법 수집된 것에 대해 지급할 보험금액이 확정된 뒤 판단한 것이었다. 2017년 판결은 어느 경우에 민사재판의 증거수집행위가 위법하지 않은지 판단한 뒤 보험금액을 확정한 것이다. 따라서 위 두 판결은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

두 판결의 차이는 2006년 사건에서는 사진촬영을 하고도 장애율이 15% 정도 수정되는 데 그쳤으나 2017년 사건에서는 촬영 결과 70% 정도가 수정됐다는 데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차이는 2006년 판결에서는 몰래 촬영이 아니더라도 보험금청구자의 장애상태를 얼마든지 다툴 수 있다고 봤고, 2017년 하급심 판결에서는 다툴 방법이 마땅치 않은 만큼 몰래 촬영이 허용된다고 본 점에 있다.

2017년 판결은 특히 민사소송에 임하는 교통사고 피해자들이 통상 자신의 상해를 과장하는 경향을 지적했다. 보험사기가 횡행하는 현실을 직시한 것이다. 실제로 몰래 촬영한 사진이라도 내놓지 않으면 터무니없는 피해자의 주장과 감정의견일지라도 이를 탄핵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보험가입자의 공동이익 지켜야

위법수집증거를 배제(형사소송법 제308조의2)하는 형사소송과 달리 위법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종래의 다른 민사판결까지 고려하면 초상권과 사생활은 우리 사회가 다른 모든 법익을 희생하며 지킬 것은 아니다. 실체적 진실 발견도 당사자와 사회의 중요한 법익이다. 더구나 피해자가 타인의 손실에서 이득을 구하기 일쑤인 보험범죄 등에서는 사생활 보호가 절대선이 아니다. ‘나이롱 환자’가 피해를 과장했다고 의심하는 것이 합리적인 상황이고 침해의 수단과 내용이 과도하지 않다면 보험사의 침해행위를 위법하다고 하기 어렵다. 2007년 대법원 판결에서 말한 보험가입자들의 공동의 이익은 2017년 판결의 침해행위의 보충성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그 의미가 살게 됐다.

■ "진실발견 최우선"…미국선 보험사 무단촬영 용인

미국에서는 보험사 직원과 내부 부서, 손해사정사, 사설탐정 등이 보험사건의 증거 수집에 나선다. 조사 대상의 사생활 보호가 중요하지만 진실 발견의 사회적 이익도 강조된다.

196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대법원은 보험사가 교통사고 피해자의 일상생활을 추적하도록 탐정에게 의뢰해 그가 행인이 오가는 곳에서 피해자 몰래 사진을 찍은 행위를 사생활 침해로 보지 않았다. 이 ‘포스터 대 맨체스터(Forster vs. Manchester) 판결’은 보험사의 무단촬영을 용인한 첫 판결이다. 법원은 특히 피해를 과장한 사람은 자신의 부상 정도에 대해 상당한 조사가 이뤄지리라고 예상할 것이고 그 범위 내에서 사생활 보호를 포기한 것으로 봤다. 실체적 진실 발견의 결과, 부당한 보험료 지급 책임을 면한 보험사의 이익과 함께 불필요한 보험료 인상 억제와 같은 사회적 유용성이 강조된다.

김선정 < 동국대 법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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