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절대평가 '벌집' 건드린 교육부…불만폭주에 '당혹'
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를 둘러싼 찬반논쟁이 갈수록 가열되고 있다. 교사, 학부모, 수험생, 시민단체 등 각계 입장에 따라 불만이 쏟아지면서 ‘여론을 떠보려다 벌집만 건드린 꼴’이란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 1호’인 수능 개혁이 좌초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교사들 “선(先) 내신, 후(後) 수능 개혁”

교육부는 지난 10일 2021학년도 수능 개편을 위해 시안 2개를 발표했다. 4개 과목만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1안과 전 과목을 절대평가화하는 2안 중 하나를 이달 말께 확정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치겠다는 게 교육부 의도였지만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불만 폭주’로 치닫고 있다.

가장 반발하는 집단은 일선 교사들이다. 박백범 성남고 교장은 “두 가지 안 모두 고교 교육 정상화라는 취지와 맞지 않다”고 했다. 수험생의 학습 부담이 7개 과목에서 8개 과목으로 오히려 늘어났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수업 노트도 빌려주지 않을 정도로 친구들을 치열한 경쟁자로 만드는 현재의 내신 시스템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말했다. 대구의 한 교사는 “내신은 그대로 놔둔 채 수능만 100% 절대평가로 바꾸면 고교학점제 등 교실 혁신을 위한 다른 제도 도입이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교사단체들은 일선 교사들과는 미묘하게 의견이 갈린다. 내신 절대평가도 중요하지만 이번 수능 개편이 문재인 교육개혁의 ‘스타트’라는 점에서 우선 전 과목 절대평가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가 15일 “수능 개편안 가운데 4개 과목만 절대평가하는 안은 시험과목만 늘린 개악”이라며 “2안이 대학 서열화와 재수생 양산을 막고 사교육을 줄이는 현실적인 차선책”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진보성향의 교사단체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쏟아지는 불만, 당혹스런 교육부

학부모와 수험생들 역시 입시전략에 혼란만 가중시킨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현 대입 제도의 마지막 세대가 될 고1들 사이에서 자퇴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면 전환될 경우 내신 관리를 제대로 못한 학생들은 상위권 대학 입학 가능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어서다. 내신을 기존의 수·우·미·양·가 평가방식에서 석차등급제로 바꾼 2002 대입제도 개편 때도 외국어고 학생 절반가량이 집단 자퇴한 일이 있었다.

대학들은 이번 논쟁에서 한 발 물러나 있긴 하지만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에 대해선 반대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백광진 중앙대 입학처장은 “영어를 올 수능에서 처음으로 절대평가로 치르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확실성이 크다”며 “당분간은 변별력 있는 수능 제도를 유지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 입학처장도 “미국 대입은 내신을 절대평가로 하고, 수능 격인 SAT나 ACT는 상대평가”라며 “둘을 어떻게 조합할지는 대학의 자율”이라고 했다.

‘백가쟁명’식으로 불만들이 쏟아지면서 교육부로선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2개의 시안 중 어떤 걸 선택하더라도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한 교육계 인사는 “점진안을 택하자니 교사들이 반발하고, 급진안을 고르면 부작용 발생 시 수험생들의 반발 등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가 고민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동휘/김봉구 기자 donghuip@hankyung.com